☆원아나의 한마디☆
겉보기엔 완벽하고 평온해 보이는 새집, 하지만 그 벽장 깊숙한 곳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잔혹한 진실이 숨어 있었습니다. 현미경 속 '백혈구'라는 기이한 단서가 들추어내는 인간 욕망의 가장 서늘한 이면을 아나운서의 깊이 있는 목소리로 마주해 보시죠.
소설 원고 스크립트 전문(全文)
백혈구 (白血球)
도요시마 요시오 (豊島与志雄)
드르륵…… 쾅!
평소와 다르게 거칠게 현관문을 여닫는 소리가 나더니, 허둥지둥 신발을 벗기 무섭게 아야코가 거실로 뛰어 들어왔다. 잔뜩 상기된 얼굴에 두 눈은 놀란 듯 동그랗게 커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엄마 아키코는 하던 바느질을 멈추고 조용히 딸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니, 그렇게 허둥대고. ……오늘따라 좀 늦었구나."
"네, 오늘 당번이었거든요."
아야코는 손에 든 짐을 바닥에 내려놓고 겉옷도 벗지 않은 채 털썩 주저앉더니, 이내 낮고 강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엄마!"
"응?"
아키코는 일감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엄마!" 아야코는 다시 부르며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 "우리 집, 이상한 집이라면서요?"
아키코는 잠자코 있었다.
"오늘요, 구로다 아줌마가 '너희 집에 뭐 이상한 일 없니?' 하고 묻는 거예요. 무슨 소린지 몰라서 자세히 들어보니까, 이 집이 예전부터 소문난 집이래요. 뭔가 수상한 일이 일어난다고요. 그래서 들어오는 사람마다 얼마 못 버티고 이사를 가버리는 바람에 비어 있을 때가 더 많았대요. 그런데 우리가 이사 와서 너무 멀쩡하게 살고 있으니까, 아는 사람들은 다들 신기하게 생각한대요. ……진짜로 아무 일도 없냐고 끈질기게 물어보길래, '그런 거 없어요. 설령 있다고 해도 요새 세상에 귀신을 누가 믿어요?'라고 쏘아붙여 줬어요. 하지만……."
"사모님!"
그때 닫힌 방문 너머로 가정부인 키요 아주머니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키코는 순간적으로 매서운 눈초리를 해 보였다. 아야코는 영문을 모른 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아키코는 키요의 물음에 대충 대답을 얼버무려 돌려보내고는, 잠시 후 진지한 얼굴로 딸을 돌아보았다.
"그런 얘기는 밖에서 함부로 하고 다니면 안 돼. ……그리고 누가 이상한 일 없냐고 물어보면, 무조건 아무 일도 없다고 대답해."
"왜요?"
"왜냐니, 만약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라도 퍼져봐라……."
아키코는 왜 안 되는지 딱 잘라 말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치만 서양 동화에 나오는 꼬마 유령 같은 거라면 나와도 상관없잖아요."
입을 비쭉 내밀고 장난스럽게 눈을 굴리는 아야코의 얼굴을 보자, 아키코도 그제야 긴장을 풀고 피식 웃었다.
그러나……. 정말 그런 소문이 도는 집이라면, 마냥 마음을 놓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2층에 방 두 개, 1층에 방 세 개. 구조도 편하고 볕도 꽤 잘 드는 데다 자재는 투박해도 지은 지 얼마 안 된 새집이었다. 무엇보다 집세가 의외로 싸서 '이게 웬 떡이냐' 하며 단번에 계약하고 이사를 온 터였다. 하지만 현관에서 바로 이어지는 계단 오른쪽의 넓은 방과 달리, 왼쪽 부엌으로 통하는 복도 옆의 좁은 가정부 방만은 유독 어둑어둑하고 음침했다.
그저 그뿐이라면 어차피 일하는 아주머니가 쓰는 방이니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었지만, 이사 온 첫날 밤 키요는 그 방에서 자다가 기분이 너무 나빠서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환기가 잘 안 돼서 그렇겠지."
남편 신사쿠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혹시 몰라 구석구석 살펴보았지만, 어디에서도 수상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질녘, 북향으로 난 창문을 통해 들어오던 햇빛이 희미하게 스러질 즈음이었다. 아키코는 무심코 그 방에 들어갔다가 벽장 앞에 섰는데, 순간 오싹하고 뼛속까지 시린 기운이 훅 끼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묘하게 섬뜩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벽장문을 열어보아도 키요의 이부자리와 짐, 안 쓰는 잡동사니들만 들어 있을 뿐 조금도 이상한 건 없었다. 기분 탓이려니 하고 그녀는 입을 다물었지만, 그날 밤도 키요는 기분이 나빠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그 이후로 키요는 현관 쪽 작은 방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그 일이, 방금 아야코가 들려준 흉흉한 소문과 딱 맞아떨어졌다.
"여보,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아요?"
남편과 단둘이 남았을 때, 아키코는 그간의 일들을 털어놓으며 남편의 눈치를 살폈다. 이마 양쪽은 꽤 벗겨졌지만 콧수염만은 숱이 많고 새까만 남편 신사쿠는, 수염 끝을 비비 꼬며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이참에 진짜 귀신이라도 나온다면 딱 좋겠군."
"네?"
아키코는 남편의 농담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뭐, 진짜 흉가로 소문이 나면 집세가 뚝 떨어질 테니 우리야 좋다는 뜻이지."
"참, 사람은 심각해 죽겠는데 농담이 나오세요? 정말이지 저 방은 좀 이상하다고요."
"그럼, 내가 오늘 밤에 거기서 한숨 자보도록 할까."
워낙 타고난 성격이 낙천적인 데다 미신이나 귀신 따위는 코웃음도 치지 않는 그였다. 아내의 걱정도 대수롭지 않게 한 귀로 흘려들었고, 당연히 그 음침한 방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는 수고 따위는 할 생각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중충한 비가 축축하게 내리던 오후였다. 그 문제의 방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거실에 있던 아키코와 부엌에 있던 키요가 기겁하며 동시에 달려갔다. 막내아들 신키치가 창문 아래에 이쪽을 등진 채 막대기처럼 꼿꼿이 서 있었다. 아키코가 제일 먼저 달려갔다. 신키치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한동안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겨우 입을 열었지만, 창문 밖으로 하얀 무언가가 휙 날아갔다는 둥 횡설수설할 뿐이었다. 아이 스스로도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거 보세요, 제가 뭐라고 했어요!" 아키코는 옳다구나 싶어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짐짓 더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남편을 다그쳤다. "초등학생인 우리 애가 저렇게 기절초풍할 정도면 예삿일이 아니라고요."
신사쿠도 그제야 슬쩍 구미가 당겼다. 귀신을 믿진 않았지만, 우연이 겹치면 영적인 현상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것쯤은 부정하지 않는 그였다. 그는 시험 삼아 그 방에 들어가 이리저리 서성여도 보고, 쭈그려 앉아도 보며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복도와 방의 미닫이문을 두 번이나 거쳐 들어온 빛이 북쪽 창문에서 떨어지는 빛과 섞여 방 안은 희뿌옇게 가라앉아 있었다. 창밖으로는 옆집과의 경계인 함석 담장과 그 위로 뻗어 나온 벚나무 가지가 보였다. 햇볕이 직접 들지 않아서인지 방 공기는 발밑부터 싸늘했다.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쳐도, 벽장 쪽에서 왠지 모를 불쾌한 기운이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계속 신경을 긁는, 바보 같지만 무시할 수 없는 찜찜한 기분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벽장의 미닫이문이 기둥과 맞닿는 틈새가 어딘가 뒤틀린 탓인지 위쪽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손을 대 보았지만 딱히 찬 바람이 새어 들어오진 않았다. 문을 열어보니 키요의 짐과 낯익은 잡동사니들만 꽉 들어차 있었다. 상하좌우 벽면의 합판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려 보았지만 못질도 단단히 되어 있는 듯했다. 그런데, 벽장 안으로 쑥 집어넣었던 머리와 팔을 빼내는 순간, 훅 하고 코끝을 찌르는 냄새처럼 기분 나쁜 기운이 스윽 감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쾅 하고 벽장문을 닫아버렸다.
형언할 수 없이 찝찝한 기분이었다. 서둘러 복도로 빠져나온 그는 벽장의 반대편 벽 쪽을 둘러보았다. 부엌의 그을린 벽이었다. 이상하다 싶어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부엌 바닥의 널빤지를 두세 장 들어 올리고 벽장 바로 아래쪽을 들여다보았다. 굴러다니는 장작더미 너머로 낡은 거미줄이 엉켜 있었고, 곰팡내 나는 흙바닥이 컴컴하게 깔려 있을 뿐, 아무런 이상도 없었고 찝찝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거실로 돌아왔다.
"어땠어요?" 아키코가 눈빛으로 재촉하며 남편의 안색을 살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스스로에게 타이르듯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역시 영 찜찜했다. '스산하고 불쾌한 벽장이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거미줄처럼 엉겨 붙었다.
그 무렵 가정부 키요가 기묘한 소동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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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거실 전등 불빛이 썰물 빠지듯 스르륵 약해지더니 툭 하고 꺼졌다. 어라? 하는 순간 다시 불이 팟 하고 들어왔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전에 이번에는 아예 새까맣게 정전이 되어버렸다. 아키코는 더듬거리며 불단에 있던 양초를 찾아 불을 붙였다. 2층에서는 신사쿠가, 현관에서는 키요가 벽을 더듬으며 모여들었다. 아키코와 신키치까지 식구들이 모두 희미하게 흔들리는 붉은 촛불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전기가 확 들어왔다. 뭐야, 싱겁게. 다들 허탈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따뜻한 차나 한잔 마시자고 했으나 주전자의 물이 미지근했다. 키요가 물을 다시 끓이겠다며 부엌으로 향했다. 슬리퍼를 끈 발소리가 복도에서 철퍼덕, 철퍼덕 두세 번 울렸을까. 꺄아악! 하는 단발마의 비명과 쨍그랑! 주전자를 떨어뜨리는 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머리끝까지 쭈뼛 선 키요가 사색이 되어 거실로 뛰어 들어왔다.
키요의 말인즉슨, 복도를 걷다가 무심코 옆을 돌아보았는데 그 하녀 방 미닫이문 너머로 새까맣고 거대한 괴물이 스윽 하고 솟아올랐다는 것이다. 그 뒤로는 무서워서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키요가 너무 벌벌 떨며 진지하게 말하는 바람에 식구들 모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어쨌든 확인은 해야 했기에, 신사쿠가 앞장서고 아키코가 뒤를 따르며 문제의 방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현관 쪽에서 복도로 나서자, 과연 장지문에 새까맣고 거대한 그림자가 불쑥 나타났다. 하지만 그것은 현관 전등 불빛에 비친 신사쿠 본인의 그림자였다.
맥이 탁 풀리며 헛웃음이 났다.
"야, 다들 와서 구경해라. 괴물이 여기 있네."
신사쿠의 여유로운 목소리에 거실에 있던 아이들도 안도하며 다가왔다. 장지문에 여러 개의 커다란 그림자가 겹쳐 비쳤다.
"우와, 괴물이 엄청 많다!" 신키치가 신이 나서 외쳤다.
"네 그림자는 꼬마 괴물이잖아."
방금 전까지 벌벌 떨던 키요만 쏙 빼놓고, 온 식구가 장지문에 그림자를 비추며 장난을 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묘하게 분위기가 싸해지면서 다들 우두커니 선 채 입을 다물고 말았다.
신사쿠가 미닫이문을 확 열어젖혔다. 맞은편 높은 창문이 마치 죽은 사람의 허연 눈동자처럼 흐리멍덩하게 떠올라 있었다. 오싹하고 으스스한 냉기가 훅 끼쳤다.
"어머, 왜 이 방 불만 안 켜진 거죠?"
아키코의 말에 다들 그제야 눈치를 챘다. 신사쿠가 안으로 들어가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방 안이 환해졌다. 하지만 식구들은 약속이나 한 듯 말없이 뒤돌아 거실로 돌아왔다.
"무슨 놈의 그림자 소동이람!"
신사쿠는 짐짓 껄껄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 웃음마저 어색하게 굳어질 때쯤, 키요가 새로운 폭탄 발언을 했다.
"그치만... 처음에 제가 부엌으로 갈 땐 이 방 불이 확실히 켜져 있었는데요……."
그랬다. 그 방 전등은 원래 항상 켜두었었다. 정전이 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불이 들어와 있었다.
"거 보세요! 진짜 이상하잖아요." 아야코가 소리 내어 말하진 않았지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식구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무언의 시위를 했다.
"그것도 저 거인 괴물 짓인가 보지."
"야호, 여기도 괴물 있다!"
눈치 없는 신키치만 신이 나서 까치발을 든 채 맞은편 벽에 제 그림자를 비추며 놀고 있었다. 웃어야 할지 무서워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숨 막히게 기묘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불길한 그림자놀이는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신키치는 밤만 되면 전등 위치를 바꾸거나 온갖 기괴한 자세를 취하며 벽에 비치는 제 그림자를 연구하는 데 푹 빠졌다. 양팔을 벌리고 펄쩍 뛰어 비행기를 만들기도 하고, 고개를 꺾고 한 발로 서서 처녀 귀신 흉내를 내기도 했다.
"그만 좀 해. 그러다 진짜 그림자한테 잡아먹힌다?" 아야코가 핀잔을 줬다.
'그림자에게 잡아먹힌다'는 말은 그냥 툭 내뱉은 말이었지만, 묘하게 섬뜩한 울림으로 가족들의 뇌리에 박혔다.
"흥, 잡아먹히긴 누가 잡아먹혀? 내가 누나를 꿀꺽 삼켜버릴 테다!"
신키치는 탈춤이라도 추듯 기괴한 몸동작으로 벽에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그 우스꽝스러운 꼴에 키요마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오그라들 정도로 겁에 질려 있었다. 해가 지면 그 하녀 방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아키코 역시 겉으로는 가족들과 웃고 떠들었지만, 단둘이 남았을 때 남편에게 못을 박았다.
"여보, 안 되겠어요. 당장 집 알아봐요. 나 이 집에서 단 하루도 더 살기 싫어요."
"음, 그러지 뭐." 신사쿠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 탓이라 우기려면 못 할 것도 없었지만, 솔직히 그 벽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소름 끼쳤다. 게다가 그림자놀이에 미쳐가는 신키치의 모습마저 어쩐지 불길하고 섬뜩하게 느껴졌다.
'에이, 설마 진짜 귀신이겠어?' 하다가도, '아니야, 그래도 영 찜찜한데…' 하며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렸다.
'괜찮은 집이 나오면 바로 이사해야지.' 낮에는 그렇게 느긋하게 생각하다가도, 밤만 되면 문제의 방 주변이 무덤처럼 음산하게 느껴졌다. 몰래 아주 밝은 50와트짜리 전구로 갈아 끼워봤지만, 소용없었다. 특히 그놈의 벽장 근처가…….
"알았어, 내일부터 당장 집 알아볼게." 신사쿠는 아내를 달랬다.
하지만 말뿐이었고, 이사는 하루 이틀 계속 미뤄졌다. 참다못한 아키코가 집에 드나드는 상인들에게 몰래 빈집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요일, 신사쿠의 집에 갑자기 형사가 찾아왔다.
오후 1시쯤이었다. 집 보러 나가자고 성화를 부리는 아내에게 미적지근한 대답만 늘어놓으며, 신사쿠는 오전 내내 뒹굴거렸다. 그사이 몰래 혼자 그 방에 들어가 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소름이 쫙 돋을 만큼 기분이 더러웠다. 점심을 먹은 뒤 2층 거실에 누워 유리창 너머로 화창한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곱씹어보니 어처구니없으면서도,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묘한 공포심이 밀려왔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허공만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가정부 키요가 누군가의 명함을 들고 왔다. '○○경찰서 소속 형사 나카이 우헤이'.
경찰이 도대체 왜? 신사쿠는 영문을 몰라 명함만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일단 형사를 안으로 모시라고 했다.
수수한 겉옷에 단정한 바지 차림, 짧게 깎은 스포츠머리를 한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순박한 인상의 사내였다. 그의 겉모습과 '형사'라는 직함이 도무지 매치되지 않았다. 나카이 형사는 깍듯이 인사를 건넨 뒤, 주말에 불쑥 찾아와 죄송하다며 장황하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말끝을 흐리는 품새가 묘하게 찜찜했다. 신사쿠가 단도직입적으로 무슨 일로 오셨냐고 물었다.
"실은, 동네에 좀 이상한 얘기가 돌아서 찾아뵈었습니다……."
나카이 형사는 정중함과 직업적인 날카로움이 교차하는 묘한 어조로 입을 뗐다. 신사쿠네 집에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것이었다. 원래부터 흉흉한 소문 때문에 세입자들이 금방금방 도망쳐 나가던 집인데, 신사쿠 일가가 꽤 오래 버티고 있으니 동네 사람들이 신기해하던 차에, 결국 또 이상한 일들이 터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본인도 우연히 그 소문을 주워들었는데, 형사 짬밥상 이런 괴담에서 오래된 미제 사건의 단서를 찾는 경우가 꽤 있어서, 도대체 무슨 '수상한 일'을 겪었는지 직접 확인차 들렀다는 설명이었다.
"절대 피해가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냥 수사에 참고만 할 테니, 부담 갖지 마시고 겪으신 일들을 편하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비공식적으로 묻는 겁니다."
신사쿠는 허탈하게 웃으며 잠시 망설였다.
"혹시 곤란하시다면 무리해서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형사의 그 한마디가 신사쿠의 심기를 묘하게 건드렸다. 자기가 무슨 괴기스러운 범죄에라도 연루됐다고 의심받는 건가 싶어 불쾌했지만, 이내 어이없는 헛웃음이 났다. 에라 모르겠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속 시원하게 다 털어놔 버리자 싶었다.
"수상하다고 해봐야 뭐 확실하게 본 건 없습니다. 다 기분 탓이겠지만, 그저 그 방……"
그는 그 문제의 '벽장'이 얼마나 소름 끼치게 불쾌한지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았다.
신사쿠의 하소연을 진지하게 듣고 있던 형사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혹시 그 벽장을 직접 조사해 봐도 되겠냐고 물었다. 찝찝한 원인을 확실히 밝혀내는 게 가족들을 위해서도 좋지 않겠냐는 설득이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신사쿠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내 아키코의 의견도 물어야 했기에 그녀를 2층으로 불렀다.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아키코는 의아한 표정으로 형사를 쳐다보더니 이내 미간을 팍 찌푸렸다.
"하지만 경찰까지 집에 들락거리면, 애들이나 도우미 아주머니가 지레 겁먹고 더 불안해하지 않을까요?"
지극히 당연한 걱정이었다.
"그럼 가족분들이 다 외출하셨을 때 나중에 따로 들르겠습니다." 형사가 물러섰다.
하지만 멍석이 깔리자 신사쿠는 오히려 마음이 급해졌다. 이왕 시작한 거 한시라도 빨리 그 벽장의 정체를 까발리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는 아내를 설득해 식구들을 당장 집 밖으로 내보내기로 했다. 키요에게 아이 둘을 맡겨 동물원으로 놀러 보냈다. 아야코는 입을 삐죽이며 귀찮아했지만, 막내 신키치와 키요는 웬 떡이냐며 좋아라 집을 나섰다.
집에 단 셋만 남자, 신사쿠 부부는 형사를 문제의 방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막상 경찰과 함께 방에 들어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불길한 기운이 싹 가시고 평범한 방처럼 느껴졌다. 벽장 안의 짐을 하나둘 빼내면서 신사쿠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역시 다 내 기분 탓이었어.' 그는 머쓱함에 묻지도 않은 변명을 연신 늘어놓았다.
그러나 방안을 훑는 형사의 눈빛은 매처럼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이마를 잔뜩 구긴 채 사냥개처럼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았다. 벽장 안을 샅샅이 뒤지고, 방 안팎을 꼼꼼히 살피더니, 급기야 부엌 바닥 널빤지 틈으로 상반신을 반쯤 쑤셔 넣고는 긴 막대기로 벽장 밑바닥 흙을 파헤치기까지 했다. 한참을 그렇게 뒤지던 형사는 마침내 벽장 앞으로 돌아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부부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거봐, 아무것도 없잖아.' 머쓱함을 넘어, 내심 무언가 대단한 비밀이라도 밝혀질까 기대했던 마음이 차갑게 식어 내렸다. 형사가 갑자기 벽장 구석의 특정 널빤지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지만 부부는 심드렁할 뿐이었다. 형사가 장도리와 망치를 가져다 달라고 했을 때도 그저 기계적으로 움직여 건네주었다.
형사는 벽장 구석에 박힌 합판 한 장에 온몸을 던지듯 매달려 뜯어냈다. 나무 쪼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러더니 주변에 굴러다니던 엉뚱한 판때기를 주워와 그 빈자리를 대충 쿵쾅거리며 막아버렸다. 땀범벅이 된 채 일어난 형사는 복도로 걸어 나와 바지 먼지를 툭툭 털더니, 아까 뜯어낸 그 합판을 눈이 뚫어질 듯 노려보았다.
옆에서 슬쩍 훔쳐보니, 그 널빤지 끄트머리에는 불에 그슬린 자국이 시커멓게 남아있었고, 표면에는 곰팡이인지 뭔지 모를 작고 허연 반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냥 썩은 나무판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주말에 소란 피워 정말 죄송합니다." 형사가 고개를 숙였다. "일단 이 널빤지만 증거물로 가져가 보겠습니다."
"벌써 다 끝난 겁니까?" 신사쿠가 물었다.
"네, 다른 특이사항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다 썩은 판때기가 수사에 무슨 도움이라도 됩니까?"
"글쎄요……." 형사 본인도 확신이 없는 듯 말끝을 흐렸다.
그럼에도 형사는 차를 한 잔 얻어 마시더니, 신문지에 칭칭 감싼 널빤지를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양 소중히 끌어안고 쏜살같이 돌아갔다.
"형사님, 혹시 뭐라도 밝혀지는 게 있으면 저희한테도 꼭 좀 알려주십시오." 신사쿠가 배웅하며 신신당부했다.
"이유라도 확실히 알아야 두 다리 뻗고 잘 것 같아서 그럽니다."
"알겠습니다." 형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힘차게 대답했다. "결과가 나오면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형사가 폭풍처럼 다녀간 뒤, 그 하녀 방의 벽장은 마법이 풀린 것처럼 허무할 정도로 평범해졌다. 방 특유의 서늘하고 음침한 분위기는 여전했지만, 형사가 원래 있던 널빤지를 뜯어가고 엉뚱한 나무토막으로 대충 기워놓은 꼴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느꼈던 섬뜩한 공포심이 아침 햇살에 증발해 버린 이슬처럼 우스워졌다.
"이것 봐, 역시 아무것도 아니었잖아."
"그러게 말이에요. 우리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나 봐요."
부부는 흉물스럽게 기워진 벽장 앞에서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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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 또 다른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근데 도대체 경찰은 그 썩은 널빤지를 가져가서 뭘 어쩌려는 걸까?"
눈에 보이지 않던 귀신이나 미신 따위의 허상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과학수사'와 '경찰'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차가운 공포가 대신 채우기 시작했다. 피할 수 없는 '진짜' 범죄의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에이,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신사쿠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보란 듯이 그 방 한가운데 떡하니 주저앉아 외출에서 돌아온 식구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얘들아, 다들 걱정할 거 없어! 벽장 바닥에 구멍이 나서 마루 밑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바람에 기분이 나빴던 거였어. 경찰관 아저씨가 이렇게 판자로 튼튼하게 막아주고 갔으니까 이제 안심해도 돼!"
그는 벽장 안의 짐들을 확 치우며 보란 듯이 덧대어 놓은 판자를 가리켰다. 하지만 식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키요는 여전히 불신 가득한 눈초리였고, 아야코는 미간을 팍 구긴 채 의심을 거두지 않았으며, 막내 신키치는 딴청을 피웠다. 아내 아키코마저 억지웃음을 짓고 있었다. 무언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찜찜하고 기분 나쁜 응어리가 여전히 그 방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단 1분도 그 방에 편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한밤중에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적막한 어둠 속에서 누군가 뚫어지게 등골을 쳐다보는 것 같은 서늘한 기척에 온몸의 솜털이 쭈뼛 섰다. 이제 그것은 처녀 귀신이나 괴물 같은 유치한 공포가 아니었다. '저 벽장 뒤에 어떤 끔찍한 사연이 얽혀있는 건 아닐까…….' 피할 수 없는 끔찍한 진실을 예감하는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새집이라는 사실이 더욱 소름 끼쳤다.
"이 집, 신축 건물이라고 하지 않았어?"
"네, 지은 지 3년밖에 안 됐대요."
아키코는 대답하면서 남편의 눈빛에서 '괜찮다'는 확신을 찾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남편의 눈동자 역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아키코는 다시 짐을 싸자고 남편을 들볶기 시작했다.
"그래도 형사가 연락 주기로 했잖아……."
신사쿠는 경찰 핑계를 대며 버텼지만, 나카이 형사는 그 뒤로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렇다고 제 발로 경찰서에 찾아가 "우리 집 벽장 판때기 어떻게 됐습니까?" 하고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부부가 거실 화로 앞에 마주 앉아 땅이 꺼져라 한숨만 푹푹 쉬고 있을 때였다. 신키치가 좁은 현관 방에서 누나와 도우미 아주머니를 앉혀놓고 또 그림자놀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토끼니 여우니 하는 건 진작에 졸업했고, 처녀 귀신 흉내도 질린 모양이었다. 녀석은 연신 기괴한 몸짓을 섞어가며 새로운 괴물 그림자를 만들어내려 낑낑대고 있었다.
"짜잔! 이번엔 두꺼비 괴물이다!"
신사쿠가 빼꼼히 들여다보니, 녀석은 엎드린 채 벽을 노려보며 양서류처럼 기괴하게 관절을 꺾고 있었다. 그 꼴이 하도 우스꽝스러워 피식 웃음이 났다.
"야, 아빠가 진짜 무서운 거 하나 보여줄 테니까 거기 가만히 있어 봐."
신사쿠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두 손을 겹쳐 벽 쪽으로 불쑥 내밀었다. 두꺼비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뱀을 만들 생각이었지만, 손가락이 뻣뻣해 영 모양이 안 났다.
"아유, 아빠 진짜 못한다!" 신키치가 코웃음을 쳤다. "귀신 그림자는 내가 최고라니까!"
녀석은 보란 듯이 손가락을 기괴하게 뒤틀어 온갖 흉측한 유령 흉내를 냈다.
"어머머, 도련님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자꾸 그러면 진짜 귀신 붙어요."
아주머니가 사색이 되어 말렸지만, 사실 지금 이 집에서 공포에 질린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그날 새벽. 날카롭고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온 집안을 뒤흔들었다. 부부와 아야코가 혼비백산하여 깨어났다. 비명 소리의 근원지는 다름 아닌 신키치였다. 녀석은 방 한가운데에 시체처럼 뻣뻣하게 굳어 서 있었다.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텅 비어 있었다. 부부가 아이를 끌어안고 겨우 진정시켜 자리에 눕혔지만, 아이는 무언가에 홀린 듯 허공만 부릅뜨고 쳐다봤다.
아이는 덜덜 떨며 꿈자리를 털어놓았다. 꿈속에서 자기 그림자가 통째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무리 불빛을 비춰봐도 바닥에 그림자가 안 생기길래 미친 듯이 온 집안을 헤집으며 그림자를 찾아다녔는데, 그 순간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한 공포가 밀려와 비명을 질렀다고 했다.
"그림자만 사라진 게 아니야. 조만간 너도 그림자 속에 빨려 들어가서 잡아먹힐걸."
아야코가 파리하게 질린 입술로 섬뜩한 말을 툭 던졌다.
숨소리조차 내기 힘든 끔찍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아무도 잠들지 못한 채 눈만 껌벅이는 사이, 거실 괘종시계가 '댕- 댕- 댕- 댕-' 네 번 울렸다. 규칙적인 시계추 소리가 귓가를 미친 듯이 긁어대어 신사쿠는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젠장, 나까지 미쳐 돌아가는 건가.'
신키치가 꾼 악몽이 끈적끈적하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녀 방에 매일 밤 불을 훤하게 켜두는 게 오히려 귀신을 부르는 짓은 아닐까, 하는 미신 같은 헛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불을 켜두든 말든 키요는 해만 지면 그 방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고, 아키코 역시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처럼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이대로는 다 미쳐버릴 거야. 당장 무슨 수를 내야 해…….'
신사쿠는 짐을 싸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주 일요일 아침.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아니 내심 나타나지 않길 바랐던 나카이 형사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반쯤 넋이 나가 있던 신사쿠는 뛸 듯이 기뻐하며 버선발로 현관까지 뛰어나갔다. 형사의 얼굴도 신사쿠 못지않게 상기되어 있었다. 중절모를 가볍게 쥔 손, 당당하게 벌린 어깨, 까무잡잡한 얼굴 위로 번지는 환한 미소까지. 무언가 거대한 건수를 해결한 형사 특유의 승리감에 도취해 있었다.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형사는 2층 거실로 안내되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형사의 태도는 180도 돌변해 엄숙해졌다. 피우다 만 담배를 재떨이에 꾹꾹 눌러 끄며, 마치 엄청난 기밀을 털어놓듯 은밀하고 예리한 눈빛으로 신사쿠를 쳐다보았다.
"사실 이걸 선생님께 말씀드려도 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흉흉한 소문 속에서도 의연하게 버티시는 걸 보고, 진실을 아셔도 크게 동요하지 않으실 거라 판단했습니다. 게다가 지난번에 꼭 알려달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하셨고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철저히 무덤까지 가져가셔야 합니다. 때가 되면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날 테지만, 아직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기 전 극비 수사 단계라서요."
신사쿠는 침을 꼴깍 삼키며 자세를 고쳐 앉았고,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형사가 입을 연 이야기는 그의 상상을 완전히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 썩은 널빤지에 묻어 있던 불에 그슬린 자국과 정체 모를 허연 반점들. 경찰 감식반이 1차 조사를 해보니 미심쩍은 정황이 쏟아져 나왔다. 곧바로 법의학 권위자인 다카야마 박사에게 정밀 감정을 넘겼다.
박사의 현미경 분석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 허연 반점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모기 배설물'이었다. 그리고 그 배설물 안에서 무수히 많은 인간의 백혈구가 검출되었다. 심지어 그 썩은 널빤지 자체에도 다량의 '인간의 지방(기름)'이 흠뻑 스며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경찰 수사망이 순식간에 좁혀졌다. 그 널빤지의 출처를 역추적해 보니, 놀랍게도 몇 년 전 화재가 발생했던 어느 끔찍한 현장에서 흘러나온 폐자재였다. 지금 신사쿠가 살고 있는 이 집을 3년 전 신축할 당시, 인건비를 아끼려던 목수 놈이 불탄 집에서 남은 목재를 주워와 몰래 벽장 자재로 섞어 쓴 것이었다.
더 소름 끼치는 사실은, 그 널빤지가 원래 불타버린 집에서도 똑같이 '벽장 바닥'으로 쓰였던 나무라는 점이다. 형사들이 그 화재 사건을 털어보니, 불탄 집의 주인은 이미 다른 중범죄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집이 불탈 당시 주인의 늙은 아버지가 방 안에서 타죽었고, 주인은 아버지 몫으로 나온 1만 엔이라는 거액의 생명보험금을 꿀꺽 삼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기서 베테랑 형사들의 촉이 발동했다.
첫째, 방이 다 타버렸는데 어떻게 '벽장 널빤지'만 멀쩡하게 타다 남았는가?
둘째, 벽장 널빤지에 어떻게 인간의 피를 빤 모기 똥과, 사람 몸에서 흘러나온 시체 기름(지방)이 떡칠 되어 있는가?
1만 엔이라는 거액의 보험금을 퍼즐의 중심에 놓자, 3년 전 그날 밤의 소름 끼치는 진실이 영화 필름처럼 선명하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3년 전 초여름 밤.
단칸방 한가운데 60대 노인이 홀로 곯아떨어져 있었다. 숨소리 하나 안 들리는 고요한 새벽이었다. 미닫이문이 스르륵 소리 없이 열리더니, 살기가 번뜩이는 두 눈을 가진 건장한 사내가 바닥을 기어 방 안을 살폈다.
사내는 벌떡 일어나 짐승처럼 소리 없이 발끝으로 다가갔다. 모기장을 들치고 들어가 주머니에서 질긴 검은색 천 띠를 꺼냈다. 노인은 입을 쩍 벌린 채 역겨운 술 냄새를 훅훅 풍기며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사내는 노인의 등 뒤로 바짝 다가가, 목덜미 아래로 천 띠를 슥 밀어 넣었다. 노인이 잠결에 뒤척였다. 그 찰나의 순간, 사내는 띠를 양손으로 교차해 노인의 목을 미친 듯이 졸랐고, 동시에 무릎으로 노인의 척추를 쾅 짓눌렀다. 짐승처럼 어깨를 한껏 치켜세우고 온 체중을 실어 노인의 숨통을 끊어버릴 듯 웅크렸다. 노인은 고통에 발버둥 치며 발치의 이불을 걷어찼지만, 짐승의 덫에 걸린 듯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컥컥거렸다.
노인의 팔다리가 미친 듯이 허공을 휘젓고 파르르 떨렸다. 발작이 멈췄나 싶더니 다시 격렬하게 요동쳤다. 하지만 발악은 점점 힘을 잃어갔고, 끔찍한 경련의 간격도 길어지더니, 마침내 '툭' 하고 온몸의 힘이 빠지며 축 늘어졌다. 완전히 숨이 끊어졌다.
3분…… 5분. 사내는 확인을 마치고 일어섰다. 노인은 목이 꺾인 채 고개를 떨구었다. 충혈된 눈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부릅떠 있었고 입은 기괴하게 벌어져 있었다. 사내는 역겨운 듯 시선을 피했다.
그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소매로 닦아냈다. 모기장을 빠져나와 곁에 있던 벽장문을 소리 없이 열었다. 안에 사람 하나 구겨 넣을 만한 빈 공간이 있었다. 사내는 모기장 밖에서 노인의 발목을 잡아 개 끌듯 질질 끌어냈다. 아직 온기가 남은 시체를 가뿐히 들어 올려 컴컴한 벽장 안에 처박았다.
문짝을 닫고, 이불을 칼같이 정리하고, 범행 도구인 천 띠를 품에 숨겼다. 방안에 자신의 흔적이 남지 않았는지 살기 어린 눈으로 스캔한 뒤 황급히 현장을 빠져나갔다. 이 모든 끔찍한 짓거리는 머릿속으로 수십 번 리허설을 거친 듯,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완벽하고 기계적으로 끝났다. 단 하나, 벽장문이 채 닫히지 않고 두세 뼘 정도 틈이 벌어져 있었다는 사실만 빼고.
방 안은 다시 무덤처럼 고요해졌다. 옆방에서 이따금 웅얼거리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왔다. 벌어진 벽장 틈새 안쪽의 풍경은 지옥 그 자체였다. 눈을 부릅뜬 채 입을 벌리고 코에서 역겨운 진물을 줄줄 흘리는 노인의 교살 시체. 풀어헤쳐 진 잠옷 사이로 뻗어 나온 뻣뻣한 팔다리가 차갑게 굳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피비린내 나는 시체 위로 굶주린 여름 모기 떼가 새까맣게 달라붙었다.
괘종시계가 새벽 3시를 알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 그 사내가 성큼성큼 다시 들어왔다. 손에는 인화성 알코올 병과 성냥이 들려있었다. 벽장으로 다가간 그는, 자신이 문을 덜 닫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흠칫 놀라 멈춰 섰다. 어깨를 흠칫 떨며 문을 열어젖히고 노인의 시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방바닥과 벽장에 알코올을 처바르기 시작했다. 성냥을 긋자 시퍼런 불길이 순식간에 방안을 집어삼켰다. 불길이 천장까지 치솟는 것을 확인한 사내는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불기둥이 온 집안을 집어삼켰다. 지붕이 무너져 내릴 즈음, 맹렬한 불길 속에서 노인의 시체는 마치 조각배 위에 누운 것처럼 벽장 밑바닥 널빤지에 엎어진 채 지글지글 고기로 구워져 갔다. 시체 기름이 바닥에 스며들고, 백혈구를 가득 머금은 모기 똥들이 재와 엉겨 붙었다. 그 처참한 시체는 집이 잿더미가 되기 직전, 출동한 소방관들의 곡괭이에 의해 파헤쳐졌다.
형사가 영웅담처럼 늘어놓은 그 끔찍한 살인 사건의 재구성은, 신사쿠 부부에게 그 어떤 기괴한 귀신 이야기보다 수백 배는 더 소름 끼치고 토악질이 나오는 현실적인 공포였다. 내가 밟고 자던 그 바닥이 끔찍한 살해 현장의 토막이었다니.
부부는 바로 다음 날 아침, 눈에 띄는 허름한 빈집을 대충 계약해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야반도주하듯 이사해 버렸다. 그 끔찍했던 벽장을 떠올리기만 해도 한겨울에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온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이사 온 집은 볼품없고 누추했지만, 이삿짐이 널브러진 거실 한가운데 털썩 주저앉은 부부는 비로소 숨을 돌렸다. 여전히 그 불에 탄 널빤지와 핏발 선 노인의 환영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그들은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짐 정리도 안 하고 혼이 나간 듯 주저앉은 부부의 얼굴을, 아야코와 신키치, 키요가 의아한 표정으로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집이 좀 더러우면 어떠랴. 적어도 이 집 바닥엔 끔찍한 핏자국 따위는 없을 테니까. 그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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