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일상의 공간이 누군가의 뒤틀린 욕망으로 채워져 있다면 어떨까요. 에도가와 란포가 선사하는 기괴하고도 탐미적인 미스터리, 그 서늘한 감촉의 기록을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소설 텍스트 전문 (全文)
인간 의자 (人間椅子)
에도가와 란포
요시코는 매일 아침 남편이 출근하는 것을 배웅하고 나면, 대개 오전 10시가 지나서야 비로소 온전한 자신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 양옥 건물 쪽에 있는 남편과 공용으로 쓰는 서재에 틀어박히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지금 K 잡지의 올여름 특집호에 실을 장편 소설을 집필하는 중이었다.
아름다운 인기 여성 작가인 그녀는, 최근 들어 외무성 서기관인 남편의 존재감을 희미하게 만들 정도로 유명해져 있었다. 그녀에게는 매일같이 이름 모를 숭배자들로부터 수많은 편지가 날아들었다.
오늘 아침에도 그녀는 서재 책상 앞에 앉아, 본격적인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 낯선 이들이 보낸 편지들을 훑어봐야 했다.
대부분 뻔하고 지루한 내용의 편지들뿐이었지만, 그녀는 특유의 다정한 성품 덕분에 어떤 내용의 편지든 자신에게 온 것은 일단 한 번씩은 다 읽어보곤 했다.
간단한 것부터 먼저 처리하느라 두 통의 편지와 한 장의 엽서를 읽고 나니, 제법 두툼한 원고 뭉치 하나가 남았다. 특별히 원고를 보내겠다는 사전 연락은 없었지만, 이렇게 불쑥 원고가 날아오는 일은 전에도 종종 있었다. 대개는 장황하고 따분하기 짝이 없는 글들이었지만, 그녀는 어찌 됐든 제목이라도 확인해 두자는 생각에 봉투를 뜯고 안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예상대로 원고지에 쓰인 글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제목도, 보낸 사람의 이름도 없이 대뜸 "사모님"이라는 호칭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어라, 이것도 결국 편지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무심코 두세 줄 눈을 내리깔던 그녀는, 그 문장들 속에서 묘하게 기분 나쁘고 비정상적인 무언가를 예감했다. 그리고 타고난 호기심에 이끌려 그녀는 점점 더 깊이 그 글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인간의자_에도가와 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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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
사모님께서는 전혀 알지 못하시는 낯선 남자로부터 이렇게 갑작스럽고 무례한 편지를 보내게 된 죄를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사모님께서는 무척 놀라시겠지만, 저는 지금 당신 앞에서 제가 저질러 온 세상에도 기이한 죄악을 고백하려 합니다.
저는 지난 몇 달 동안 완전히 인간 세상에서 모습을 감춘 채, 그야말로 악마 같은 생활을 이어왔습니다. 물론 이 넓은 세상에서 제 행적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만약 아무 일도 없었다면, 저는 이대로 영원히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제 마음에 기이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도저히 이 기구한 제 신세를 참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만 말씀드리면 여러모로 의아하게 생각하실 점도 있겠으나, 부디 이 편지를 끝까지 읽어주십시오. 그러시면 제가 왜 그런 마음을 먹게 되었는지, 또 왜 하필 이 고백을 사모님께서 들어주셔야만 하는지, 그 모든 것이 명백해질 것입니다.
자, 무엇부터 적어 내려가야 할까요. 워낙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기괴천만한 사실이기에, 이런 인간 세상의 '편지'라는 방식으로 전하려니 묘하게 쑥스럽고 펜이 무뎌지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망설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어찌 됐든 일이 시작된 순서대로 적어보겠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흉측한 외모를 가졌습니다. 이 점을 부디 확실히 기억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만약 당신이 이 무례한 부탁을 받아들여 저를 만나주셨을 때, 가뜩이나 흉한 제 얼굴이 오랜 기간의 불건전한 생활로 인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는 모습을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보시게 된다면, 그것은 제게 너무도 견디기 힘든 일일 테니까요.
저란 남자는 어쩌면 이리도 기구하게 태어난 것일까요. 그렇게 흉측한 외모를 가졌으면서도, 가슴속에서는 남몰래 세상 그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괴물 같은 얼굴을 한, 게다가 지독히도 가난한 한낱 직공에 불과한 제 현실을 잊은 채 분수에 맞지 않는 달콤하고 사치스러운, 온갖 종류의 '꿈'을 동경해 왔습니다.
제가 만약 조금 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돈의 힘으로 여러 유희에 빠져 추악한 외모에서 오는 참담함을 달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제게 조금 더 예술적인 재능이 주어졌더라면, 예컨대 아름다운 시와 노래로 이 세상의 삭막함을 잊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불행한 저는 그 어떤 축복도 받지 못한 채, 가엾은 가구 직공의 아들로서 아버지가 물려준 일거리로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전문은 다양한 의자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만든 의자는 아무리 까다로운 고객이라도 반드시 마음에 들어 했기에, 가구점에서도 저를 특별히 여겨 늘 최고급 일거리만 맡기곤 했습니다. 그런 최고급품이 되면 등받이나 팔걸이 조각에 까다로운 주문이 붙기도 하고, 쿠션의 푹신함이나 각 부분의 치수 등에 미묘한 취향이 반영되어,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반인은 상상도 못 할 고심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한 만큼 완성되었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건방진 말씀일지 모르나, 그 기분은 예술가가 훌륭한 작품을 완성했을 때의 환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의자가 하나 완성되면 저는 가장 먼저 직접 그곳에 앉아 느낌을 시험해 봅니다. 무미건조한 직공의 생활 속에서도 그때만큼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우월감을 느낍니다.
이 의자에는 어떤 고귀한 분이, 혹은 어떤 아름다운 분이 앉게 될까. 이렇게 훌륭한 의자를 주문할 정도의 대저택이니, 그곳에는 분명 이 의자에 걸맞은 호화로운 방이 있겠지. 벽에는 틀림없이 유명한 화가의 유화가 걸려 있고, 천장에서는 거대한 보석 같은 샹들리에가 빛나고 있을 거야.
바닥에는 값비싼 양탄자가 깔려 있겠지. 그리고 이 의자 앞 탁자에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화려한 서양 꽃들이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피어 있을 것이다. 그런 망상에 빠져 있다 보면 어느새 저 자신이 그 훌륭한 방의 주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형언할 수 없는 쾌감에 젖어 들곤 합니다.
제 헛된 망상은 끝없이 부풀어 오릅니다. 이 제가, 가난하고 추악한 한낱 직공에 불과한 제가, 망상의 세계에서는 기품 있는 귀공자가 되어 제가 만든 훌륭한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언제나 제 꿈속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연인이 화사하게 미소 지으며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망상 속에서 그녀와 손을 맞잡고 달콤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이 몽롱하고 찬란한 보랏빛 꿈은, 이웃집 아주머니의 시끄러운 수다 소리나 신경질적으로 울부짖는 동네 병든 아이의 울음소리에 산산조각이 나고, 제 눈앞에는 또다시 추악한 현실이 그 잿빛 민낯을 드러내고 맙니다. 현실로 돌아온 저는 그곳에서 꿈속의 귀공자와는 닮은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가엾고 흉측한 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방금 전까지 제게 미소 지어주던 그 아름다운 사람은... 그런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입니까. 동네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노는 지저분한 식모 아기 돌보미 소녀조차 저 같은 놈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오직 제가 만든 의자 하나만이 방금 전 꿈의 흔적인 양 그곳에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의자마저도 이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저희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실려 가 버리지 않습니까.
저는 의자를 하나씩 완성할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허함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하고 역겨운 기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제게는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어갔습니다.
'이런 구더기 같은 삶을 계속 이어가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편이 낫다.'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작업장에서 묵묵히 끌을 사용하고, 못을 박고, 코를 찌르는 강한 도료를 섞으면서도 그 생각만을 집요하게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잠깐, 죽어버릴 바에야, 그 정도 결심을 할 수 있다면 무언가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그렇게 제 생각은 점점 더 무서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무렵, 저는 이전에 한 번도 만들어 본 적 없는 거대한 가죽 팔걸이의자 제작을 의뢰받았습니다. 이 의자는 같은 Y 시에서 외국인이 경영하는 어느 호텔에 납품할 물건이었습니다. 본래라면 그들의 본국에서 수입해야 할 것을, 제가 고용되어 있던 가구점이 로비하여 일본에도 수입품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의자 직공이 있다며 간신히 따낸 주문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저 역시 숙식을 잊어가며 그 제작에 매달렸습니다. 진심으로 혼을 담아 미친 듯이 몰두했습니다.
완성된 의자를 보았을 때, 저는 여태껏 느껴본 적 없는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보기에도 넋을 잃을 만큼 훌륭한 완성도였습니다.
저는 늘 하던 대로 네 개가 한 세트인 그 의자 중 하나를 볕이 잘 드는 마루로 가져가 편안히 몸을 뉘었습니다. 얼마나 멋진 착석감인지요. 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푹신하지도 않게 몸을 쫀득하게 받쳐주는 쿠션감, 일부러 염색을 배제하고 잿빛 생지 그대로 씌운 부드러운 가죽의 촉감, 적당한 각도를 유지하며 등을 살며시 받쳐주는 풍만한 등받이, 섬세한 곡선을 그리며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양쪽 팔걸이. 이 모든 것들이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어, 그야말로 '안락함'이라는 단어가 그대로 형체를 갖춘 듯 보였습니다.
저는 그곳에 깊숙이 몸을 묻고 양손으로 통통한 팔걸이를 애무하며 황홀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자 제 오랜 버릇인 걷잡을 수 없는 망상이, 오색찬란한 무지개처럼 눈부신 색채를 띠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환영이라고 해야 할까요. 마음속에 그리는 것들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눈앞에 떠오르는 바람에, 저는 혹시 미쳐버린 것은 아닌가 덜컥 겁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중 제 머릿속에 문득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악마의 속삭임이란 아마도 그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그것은 꿈처럼 터무니없으면서도 지독히 기괴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괴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매력이 되어 저를 부추겼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제가 정성을 다해 만든 아름다운 의자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의자와 함께 어디까지라도 따라가고 싶다, 그런 단순한 바람이었습니다. 그것이 비몽사몽 망상의 날개를 펴는 사이, 어느덧 평소 제 머릿속에서 발효되고 있던 어떤 무서운 생각과 결부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아 참으로 미치광이 같은 짓이지요. 그 기괴하기 짝이 없는 망상을 실제로 실행에 옮겨보겠다고 결심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서둘러 네 개의 의자 중 가장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되는 팔걸이의자를 산산조각으로 뜯어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저의 묘한 계획을 실행하기에 안성맞춤이 되도록 다시 개조했습니다.
그것은 아주 커다란 암체어였기 때문에, 사람이 앉는 부분은 바닥에 닿을락 말락 할 때까지 가죽으로 덮여 있었고, 등받이와 팔걸이 역시 매우 두툼하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 내부에는 사람 한 명이 숨어 있어도 밖에서는 전혀 알 수 없을 만큼 널찍한 빈 공간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그곳에는 튼튼한 나무 뼈대와 수많은 스프링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저는 그것들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사람이 앉는 부분에 무릎을 넣고 등받이 쪽으로 머리와 몸통을 넣어 웅크린 채 앉아 있으면 그 안에 숨어 있을 수 있을 만큼의 여유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 세공은 제 전공이니 충분히 솜씨 좋고 편리하게 완성했습니다. 예를 들어 숨을 쉬거나 외부의 소리를 듣기 위해 가죽의 일부분에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을 틈새를 만들거나, 등받이 내부 머리 옆쪽에 작은 선반을 달아 물건을 보관할 수 있게 한 뒤 그곳에 수통과 군용 건빵을 채워 넣었습니다.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커다란 고무주머니를 설치하는 등, 온갖 궁리를 동원하여 식량만 있다면 그 안에서 이틀이고 사흘이고 틀어박혀 있어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꾸몄습니다. 말하자면 그 의자가 사람 한 명의 완벽한 방이 된 셈입니다.
저는 셔츠 한 장만 입은 채, 바닥에 만들어 둔 출입구 덮개를 열고 의자 속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참으로 기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새까맣고 숨 막히는, 마치 무덤 속에 들어간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무덤이 틀림없습니다. 저는 의자 속으로 들어가는 동시에 마치 도깨비감투라도 쓴 것처럼 이 인간 세상에서 증발해 버린 셈이니까요.
이윽고 가구점에서 보낸 사람들이 네 개의 팔걸이의자를 수령하기 위해 커다란 수레를 끌고 왔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 수제자가 (저는 그 아이와 단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수레에 실을 때 인부 한 명이 "이거 더럽게 무겁네!"라고 소리쳐서 의자 속에 있던 저는 속으로 철렁했지만, 본래 이 팔걸이의자 자체가 워낙 무거웠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을 사지는 않았습니다. 이윽고 덜컹덜컹 수레가 움직이는 진동이 제 몸에까지 기이한 감촉을 전해왔습니다.
무척 조마조마했지만 결국 아무 일 없이, 그날 오후 제 몸을 품은 팔걸이의자는 호텔의 한 방에 떡하니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곳은 개인 객실이 아니라 사람을 기다리거나, 신문을 읽거나, 담배를 피우는 등 다양한 사람들이 빈번하게 드나드는 라운지 같은 방이었습니다.
사모님께서는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저의 이 기묘한 행동의 첫 번째 목적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의자에서 빠져나와 호텔 안을 배회하며 도둑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자 속에 사람이 숨어 있을 거라는 멍청한 상상을 대체 누가 하겠습니까. 저는 그림자처럼 자유자재로 방에서 방으로 돌아다니며 물건을 훔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소동을 피우기 시작할 즈음에는 다시 의자 속 은신처로 도망쳐 들어와 숨을 죽이고, 그들의 멍청한 수색 작업을 구경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당신은 해안가 파도치는 곳에 사는 '소라게'를 아실 겁니다. 커다란 거미 같은 꼴을 하고 사람이 없을 때는 제 세상인 양 으스대며 기어 다니지만, 작은 발소리라도 나면 무서운 속도로 빈 소라껍데기 속으로 숨어버리지요.
그리고 기분 나쁜 털북숭이 앞발만 살짝 내밀고 적의 동태를 살핍니다. 저는 딱 그 '소라게'였습니다. 소라껍데기 대신 의자라는 은신처를 가지고, 해변이 아닌 호텔 안을 내 집처럼 누비고 다닌 것입니다.
저의 이 엉뚱한 계획은, 그것이 워낙 엉뚱했던 덕분에 사람들의 예상을 완벽히 빗나가며 보기 좋게 성공했습니다. 호텔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던 날에는 이미 한몫 두둑하게 챙겼을 정도니까요. 바야흐로 물건을 훔칠 때의 그 무섭고도 짜릿한 기분, 멋지게 성공했을 때의 형언하기 힘든 희열, 그리고 제 코앞에서 이리저리 허둥지둥 대소동을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우스꽝스러움. 그것이 얼마나 기이한 매력으로 저를 즐겁게 해주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그 이야기를 자세히 늘어놓을 여유가 없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그런 도둑질 따위보다 열 배 스무 배는 더 저를 황홀하게 만든 기괴하기 짝이 없는 쾌락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쾌락에 대해 고백하는 것이 사실 이 편지의 진짜 목적입니다.
이야기를 앞으로 돌려, 제 의자가 호텔 라운지에 처음 놓였을 때의 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의자가 도착하자 한동안 호텔 지배인들이 앉아보며 상태를 점검하고 돌아갔고, 이후로는 쥐 죽은 듯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마 방에는 아무도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의자 밖으로 나간다는 건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무척 오랜 시간 동안 (단지 체감상 그렇게 느꼈을 뿐인지도 모릅니다) 작은 소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온 신경을 귀에 집중한 채, 가만히 주위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르자, 아마 복도 쪽에서부터 무겁고 둔탁한 발소리가 울려왔습니다. 두세 칸 앞까지 다가오자 방에 깔린 양탄자 때문에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아졌지만, 이내 거친 남자의 콧숨 소리가 들리더니 헉할 새도 없이 서양인으로 보이는 거대한 몸뚱이가 제 무릎 위로 털썩 떨어지며 푹신푹신하게 두세 번 튕겨 올랐습니다.
제 허벅지와 그 남자의 떡 벌어진 둔부는 얇은 가죽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온기가 느껴질 만큼 밀착되어 있었습니다. 넓은 그의 어깨는 정확히 제 가슴 부위에 기대어졌고, 무거운 두 손은 가죽 너머로 제 손과 겹쳐졌습니다. 그리고 남자가 시가를 피우는 모양인지 남성적이고 풍성한 향기가 가죽의 틈새를 뚫고 은은하게 스며들었습니다.
사모님, 만약 당신이 제 위치에 있었다고 가정하시고 그 자리의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이 얼마나 기상천외한 광경인지요. 저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의자 속 암흑 속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겨드랑이에서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사고력마저 잃어버린 채 그저 멍하니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그 남자를 시작으로 그날 하루 종일 제 무릎 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제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부드러운 쿠션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이 실은 살아 숨 쉬는 제 허벅지라는 사실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칠흑같이 어둡고 몸조차 움직일 수 없는 가죽 속 세상. 그곳이 얼마나 기괴하면서도 매혹적인 세계인지 모릅니다. 그곳에서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평소 눈으로 보던 인간과는 전혀 다른 불가사의한 생물로 느껴집니다.
그들은 목소리, 콧숨 소리, 발소리, 옷깃 스치는 소리, 그리고 동그랗고 탄력 넘치는 몇 덩어리의 고깃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저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김새 대신 살갗에 닿는 감촉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비곗덩어리처럼 살이 쪄서 썩은 물고기 같은 불쾌한 촉감을 줍니다.
반대로 어떤 이는 바싹 말라 비틀어져 해골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 밖에 척추가 굽은 정도, 견갑골이 벌어진 모양, 팔의 길이, 허벅지의 굵기, 혹은 꼬리뼈의 길고 짧음 등 그 모든 요소를 종합해 보면 아무리 체격이 비슷한 사람이라도 어딘가 다른 구석이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외모나 지문 외에도 이런 몸 전체의 감촉을 통해서 완전히 식별해 낼 수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이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주로 외모의 아름다움과 추함으로 평가하겠지만, 이 의자 속 세상에서는 그런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오직 벌거벗은 육체와 목소리, 그리고 체취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사모님, 너무 노골적인 제 묘사에 부디 불쾌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그곳에서 한 여성의 육체에 (그녀는 제 의자에 앉은 첫 번째 여성이었습니다) 맹렬한 애착을 느꼈습니다.
목소리로 상상하건대, 그녀는 아직 어린 타국의 소녀였습니다. 마침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그녀는 뭔가 기쁜 일이라도 있는 듯 콧노래로 묘한 노래를 부르며 춤추듯 사뿐사뿐 걸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숨어 있는 팔걸이의자 앞까지 오더니, 갑자기 풍만하면서도 지극히 유연한 육체를 제 위로 내던졌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돌연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그물 속 물고기처럼 펄떡펄떡 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거의 30분 동안이나 그녀는 제 무릎 위에서 이따금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끈적하게 무거운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습니다.
이것은 실로 제게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경천동지할 대사건이었습니다. 여자를 신성한 존재, 아니 차라리 두려운 존재로 여겨 얼굴조차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던 저였습니다. 그런 제가 지금 일면식도 없는 타국의 소녀와 같은 방, 같은 의자에, 아니 그뿐만이 아닙니다. 얇은 가죽 한 겹을 사이에 두고 살결의 온기가 느껴질 만큼 밀착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무런 불안감 없이 온몸의 체중을 제게 맡긴 채, 보는 사람이 없다는 안도감 속에 제멋대로 자유로운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의자 속에서 그녀를 껴안는 시늉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가죽 너머로 그녀의 풍만한 목덜미에 입 맞출 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 어떤 짓을 하든 자유자재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뒤로, 저는 애초의 목적이었던 도둑질 따위는 뒷전으로 미루고 그저 그 신비로운 촉감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의자 속 세계야말로 내게 주어진 진짜 안식처가 아닐까. 저같이 흉측하고 소심한 사내는 밝고 환한 세상에서는 늘 위축되어 부끄럽고 비참한 삶을 이어가는 수밖에 없는 무능한 몸뚱이입니다.
하지만 일단 사는 세계를 바꿔 이렇게 의자 속에 답답함을 참고 틀어박혀 있기만 하면, 밝은 세상에서는 말을 섞기는커녕 곁에 다가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던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접근해 그 목소리를 듣고 살결을 느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의자 속의 사랑(!). 그것이 대체 얼마나 불가사의하고 도취적인 매력을 지니는지, 실제로 의자 속에 들어가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촉각과 청각, 그리고 약간의 후각만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입니다. 암흑 세계의 사랑입니다.
결코 이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악마의 세계에 존재하는 애욕이 아니겠습니까.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의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구석구석에서 얼마나 기형적이고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지 진정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처음 계획으로는 도둑질이라는 목적만 달성하면 곧바로 호텔을 탈출할 생각이었습니다만, 세상에도 기괴한 이 쾌락에 이성을 잃은 저는 도망치기는커녕 언제까지고 의자 속을 영원한 보금자리 삼아 그 생활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밤마다 외출할 때면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고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했기에 당연히 위험은 없었습니다만, 그래도 몇 달이라는 긴 세월을 단 한 번도 들키지 않고 의자 속에서 살아냈다는 것은 제 스스로 생각해도 실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거의 하루 24시간 내내 의자 속 좁은 공간에서 팔을 구부리고 무릎을 접고 있었던 탓에 온몸이 마비된 것처럼 굳어버려 제대로 똑바로 설 수도 없었고, 나중에는 주방이나 화장실을 오갈 때 앉은뱅이처럼 바닥을 기어 다녀야 했을 정도입니다. 저란 남자는 어쩌면 이리도 미치광이일까요. 그런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그 기이한 감촉의 세계를 도무지 버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투숙객 중에는 한두 달 동안이나 그 방을 자기 집처럼 사용하며 장기 투숙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본래 호텔이라는 곳이 끊임없이 손님이 드나드는 곳 아닙니까. 따라서 제 기묘한 연애 대상 역시 시간에 따라 계속 바뀌어 가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신비로운 연인들에 대한 기억은 일반적인 경우처럼 외모가 아니라 주로 육체의 윤곽과 감촉을 통해 제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어떤 이는 망아지처럼 날쌔고 매끈하게 조여진 육체를 가졌고, 어떤 이는 뱀처럼 요염하게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육체를 가졌으며, 어떤 이는 고무공처럼 살집이 올라 지방과 탄력이 넘치는 육체를 가졌고, 또 어떤 이는 그리스 조각상처럼 다부지고 힘차며 완벽하게 발달한 육체를 가졌습니다. 그 밖에도 여성들의 육체는 저마다 고유한 특징과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여성을 거쳐 가는 동안, 저는 또 그와는 다른 기이한 경험도 맛보았습니다.
그중 하나는 언젠가 유럽 어느 강대국의 대사가 (이것은 일본인 웨이터들의 수다를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 거대한 체구를 제 무릎 위에 얹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정치가로서보다 세계적인 시인으로서 더욱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기에, 그 위인의 살결을 느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찰 정도로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제 위에서 동국인 두세 명을 상대로 십 분 남짓 대화를 나누더니 그대로 자리를 떴습니다. 물론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가 몸짓을 할 때마다 꿀렁꿀렁 움직이는, 보통 사람보다 유독 뜨겁게 느껴지는 육체의 간질이는 듯한 감촉이 제게 형언할 수 없는 묘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문득 이런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만약! 이 가죽 너머로 날카로운 칼을 쥐고 그의 심장을 향해 푹 찔러 넣는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물론 그것은 그가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할 치명상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의 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의 정치계는 그로 인해 얼마나 큰 발칵 뒤집힐 것인가. 신문들은 얼마나 격정적인 기사를 쏟아낼 것인가. 그것은 일본과 그의 본국 간의 외교 관계에도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고, 또 예술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의 죽음은 전 세계적인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거대한 사건을 내 손짓 한 번으로 이렇게 허무할 정도로 쉽게 실현할 수 있다니. 그렇게 생각하니 저는 기이한 우월감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하나는 유명한 어느 나라의 무용수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그 호텔에 묵게 되어, 비록 단 한 번이었지만 제 의자에 앉았던 일입니다. 그때도 저는 대사의 경우와 비슷한 감명을 받았지만, 게다가 그녀는 제게 전에 경험해 본 적 없는 이상적인 육체미의 감촉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천박한 생각을 품을 겨를조차 없이, 그저 예술 작품을 대할 때와 같은 경건한 마음으로 그녀를 찬미했습니다.
그 밖에도 저는 참으로 다채롭고 희귀하며 신비롭고, 때로는 끔찍한 수많은 경험을 했습니다만, 그것들을 여기에 시시콜콜 늘어놓는 것은 이 편지의 목적이 아닐뿐더러 편지가 너무 길어졌으니 서둘러 핵심적인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제가 호텔에 들어간 지 몇 달이 지난 후, 제 신변에 한 가지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다름 아니라 호텔 경영자가 개인 사정으로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호텔을 내부 집기 그대로 일본의 어느 회사에 넘겨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일본 회사는 기존의 사치스러운 영업 방침을 수정하여 좀 더 대중적인 여관으로 운영하여 수익을 내고자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해진 가구 등은 대형 가구상에 위탁하여 경매에 부쳤는데, 그 경매 목록에 제 의자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한순간 깊이 낙담했습니다. 그리고 이참에 다시 바깥세상으로 나가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볼까 고민했을 정도입니다. 그 무렵에는 훔쳐 모은 돈이 제법 쏠쏠한 액수가 되어 있었기에, 설령 세상에 나가더라도 예전처럼 비참한 생활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외국인 호텔을 떠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큰 실망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희망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몇 달 동안 그토록 많은 이성을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모두 외국인이었기에, 아무리 훌륭하고 매력적인 육체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정신적으로는 묘한 공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시 일본인은 같은 일본인에게만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저는 점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제 의자가 경매에 나온 것입니다. 이번에는 어쩌면 일본인에게 팔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본인의 가정에 놓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제 새로운 희망이었습니다.
저는 어찌 됐든 의자 속 생활을 조금 더 이어가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고물상 앞 진열대에서 이삼일 동안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래도 경매가 시작되자 다행히 제 의자는 금방 주인을 찾았습니다. 낡았어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충분히 훌륭하고 멋진 의자였기 때문이겠지요.
의자를 산 사람은 Y 시에서 멀지 않은 대도시에 살고 있던 한 관료였습니다. 고물상에서 그의 저택까지 꽤 먼 길을 진동이 심한 트럭에 실려 이동할 때 저는 의자 속에서 죽을 만큼의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구매자가 제가 간절히 바라던 일본인이라는 사실에 비하면 그런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의자를 구매한 공무원은 제법 번듯한 저택의 주인이었고, 제 의자는 그곳 서양식 별채의 넓은 서재에 놓였습니다. 그런데 저를 무척이나 만족스럽게 했던 사실은, 그 서재는 바깥주인보다 오히려 그 집의 젊고 아름다운 부인이 주로 사용하는 공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 약 한 달 동안 저는 끊임없이 부인과 함께했습니다.
부인이 식사를 하거나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제외하고, 그녀의 나긋나긋한 몸은 항상 제 위에 머물렀습니다. 부인이 그 기간 내내 서재에 틀어박혀 어떤 글을 쓰는 데 몰두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녀를 얼마나 열렬히 사랑했는지는 여기서 구구절절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그녀는 제가 살결을 맞댄 첫 일본인이자 더없이 아름다운 육체를 지닌 여인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것에 비하면 호텔에서의 그 수많은 경험 따위는 결코 사랑이라 부를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 증거로 저는 이전에 단 한 번도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오직 그 부인에게만큼은 남몰래 닿는 애무의 즐거움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어떻게든 제 존재를 알리고 싶어 온갖 애를 쓰지 않았습니까.
저는 할 수만 있다면 부인 쪽에서도 의자 속의 저를 인식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염치없는 소리지만, 저를 사랑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신호해야 할까요. 만약 그곳에 사람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알린다면 그녀는 분명 너무 놀라 남편이나 하인들에게 그 사실을 알릴 것이 뻔합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끝장날 뿐만 아니라, 저는 끔찍한 죄명을 뒤집어쓰고 법의 심판까지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적어도 부인에게 제 의자를 더욱 편안하게 느끼게 하고 이 의자에 애착을 갖도록 노력했습니다. 예술가인 그녀라면 분명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예민한 감각을 갖추고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만약 그녀가 제 의자에서 생명력을 느껴준다면,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애착을 느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녀가 제 위에 몸을 던질 때면 최대한 부드럽고 푹신하게 받아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녀가 제 위에서 피로를 느낄 즈음이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살며시 무릎을 움직여 그녀의 자세를 바꿔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할 때면 저는 아주 미세하게 무릎을 흔들어 요람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제 정성이 통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제 착각인지 최근 들어 부인은 은연중에 제 의자를 각별히 아끼는 듯 보입니다. 그녀는 마치 갓난아기가 어머니 품에 안길 때처럼, 혹은 처녀가 연인의 품에 안길 때처럼 달콤하고 부드럽게 제 의자에 몸을 기댑니다. 그리고 제 무릎 위에서 몸을 움직이는 모습조차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다정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제 열정은 나날이 맹렬하게 타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아 사모님, 마침내 저는 분수도 모른 채 터무니없는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내 연인의 얼굴을 보고, 그리고 말을 나눌 수만 있다면 그 자리에서 당장 죽어도 좋다고 마음먹기에 이른 것입니다.
사모님, 당신은 물론 벌써 눈치채셨을 겁니다. 제가 말씀드린 그 연인이라는 존재는, 지나친 무례를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실은 바로 당신이십니다. 당신의 남편께서 그 Y 시의 고물상에서 제 의자를 사들인 이후, 저는 당신을 향해 닿을 수 없는 사랑을 바쳐온 가련한 사내입니다.
사모님, 평생의 소원입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저를 만나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그리고 단 한마디라도 좋으니 이 가엾고 흉측한 남자에게 위로의 말씀을 건네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저는 결코 그 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바라기에는 저는 너무나도 추악하고 더러운 놈입니다. 제발, 부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내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저는 어젯밤 이 편지를 쓰기 위해 저택을 빠져나왔습니다. 대면하여 사모님께 이런 부탁을 드리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제 스스로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서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이 편지를 읽고 계실 즈음, 저는 극도의 초조함으로 파랗게 질린 채 저택 주변을 서성이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도 무례한 소원을 들어주시겠다면, 부디 서재 창가에 놓인 패랭이꽃 화분에 당신의 손수건을 걸어 주십시오. 그것을 신호 삼아 저는 아무렇지 않은 평범한 방문객의 모습으로 저택의 현관을 두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기이한 편지는 어떤 열렬한 기도의 문구로 끝맺음되어 있었다.
요시코는 편지를 반쯤 읽었을 때부터 이미 끔찍한 예감에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기분 나쁜 팔걸이의자가 놓인 서재에서 도망쳐 나와 일본식 거실로 뛰어갔다. 편지의 뒷부분은 차라리 읽지 않고 찢어버릴까 생각했지만, 마음 한구석의 찜찜함에 이끌려 거실의 작은 탁자 위에서 끝까지 읽어 내려가고 말았다.
그녀의 예감은 역시나 적중했다.
이 무슨 소름 끼치는 사실이란 말인가. 그녀가 매일 앉아 있던 그 팔걸이의자 속에 알지도 못하는 남자가 숨어 있었다니.
"아아, 끔찍해라."
그녀는 등줄기에 찬물을 끼얹은 듯한 오한을 느꼈다.
그리고 한참 동안 걷잡을 수 없는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나 큰 충격에 정신이 아득해져서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의자를 확인해 본다고? 어떻게 감히 그런 소름 끼치는 짓을 할 수 있겠는가. 그곳에 설령 지금은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음식물을 비롯해 그가 남긴 끔찍하고 더러운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 뻔했다.
"사모님, 편지 왔습니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하녀가 방금 도착한 듯한 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
요시코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받아 들고 봉투를 뜯으려다 문득 겉봉을 보고는, 하마터면 편지를 떨어뜨릴 뻔할 정도로 극심한 경악에 사로잡혔다. 그곳에는 방금 읽은 그 기괴한 편지와 완전히 똑같은 필체로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이 편지를 열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봉투를 뜯고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편지는 아주 짧았지만, 그곳에는 그녀를 다시 한번 숨 막히게 만든 기묘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갑작스럽게 편지를 보내드리는 무례를 깊이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평소 선생님의 작품을 즐겨 읽는 애독자입니다. 별도로 동봉해 드린 것은 저의 졸렬한 창작 원고입니다. 한번 읽어봐 주시고 비평을 들려주신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없겠습니다. 어떤 이유로 인해 원고는 이 편지를 쓰기 전에 미리 우체통에 넣었으니, 아마 이미 읽어 보셨을 거라 짐작합니다. 어떠셨는지요. 만약 제 부족한 글이 조금이라도 선생님께 감명을 드릴 수 있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원고에는 일부러 빼두었습니다만, 제목은 '인간 의자'로 하고 싶습니다.
그럼 무례를 무릅쓰고 이만 줄이겠습니다. 총총. (끝)
인간의자_에도가와 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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