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7일 월요일

(소설 원고) [입맞춤_에도가와 란포] 전문(全文) 수록 [일본 미스터리 소설] 에도가와 란포 '입맞춤' - 아내의 비밀스러운 입맞춤, 그 사진 속 주인공은 누구인가? | 원아나의 책 읽는 TV 오디오북



 


 입맞춤 (接吻) 소설 전문(全文)
에도가와 란포

​1
​요즘 야마나 소조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형언할 수 없이 따뜻하고, 부드럽고, 장밋빛에 향기로운 공기가 늘 그를 감싸고 있었다. 관청의 낡은 책상에 앉아 묵묵히 일할 때나, 양은 도시락에 든 네모난 밥을 먹을 때나, 퇴근 시간인 4시가 되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다 문을 나서서 찬 바람을 맞으며 버드나무 가로수 길을 바쁘게 걸어갈 때도, 그 기분은 늘 그의 주위를 둥둥 떠다녔다.
이유인즉슨, 야마나 소조가 한 달 전쯤 새 신부를 맞이했는데, 그 아내가 그가 몹시도 사랑하던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4시 땡 치자마자 수업 끝난 초등학생처럼 서둘러 짐을 챙겼다. 무라야마 과장이 아직 어수선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을 곁눈질로 보며 관청을 뛰쳐나와 곧장 집으로 향했다.
​붉은 머리 장식을 한 오하나는 늘 그렇듯 거실의 긴 화로에 기대어, 다 차려진 밥상 앞에서 쿡쿡 웃으며 (오하나는 참 웃음이 많은 여자다) 다소곳이 앉아 있을 것이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나면 토끼처럼 튀어나올 준비를 하며 지금이나 저음이나 내 귀가를 기다리고 있겠지. 헤헤, 어쩜 이리 사랑스러울까. 명확하게 이렇게 생각한 건 아니지만, 소조의 퇴근길 마음속을 묘사하자면 대략 이랬다.
"오늘은 우리 마누라, 깜짝 놀라게 해 줄까?"

집 문 앞에 다다르자 소조는 실실 혼자 웃으며 생각했다. 그리고 발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격자문을 열고 현관 미닫이문을 연 뒤, 신발 벗는 소리조차 나지 않게 조심하며 거실 앞까지 숨어 들어갔다.
"여기쯤에서 '에헴' 하고 헛기침이라도 해볼까. 아니 잠깐. 혼자 있을 땐 어떤 모습인지 살짝 엿봐야지."
​그래서 찢어진 창호지 문틈으로 거실 안을 들여다본 순간, 아뿔싸! 야마나 소조는 창백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곳에 아주 기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
​예상대로 오하나는 긴 화로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행주로 덮어둔 밥상도 차려져 있었다. 하지만 정작 오하나는 전혀 쿡쿡 웃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긴장된 얼굴로, 사진 한 장을 들고 입을 맞추고, 꽉 끌어안고... 참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순간 소조는 번뜩 짚이는 데가 있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살그머니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가, 이번에는 쿵쿵 바닥을 울리며 거칠게 미닫이문을 확 열어젖히며 말했다.
"어이, 나 왔어."
왜 마중 나오지 않냐는 듯이 긴 화로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머나!"
오하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들고 있던 사진을 잽싸게 옷고름 사이에 숨겼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어머, 오신 줄도 전혀 몰랐어요. 죄송해요."
​그 지나치게 얌전한 말투부터가 수상했다. 소조는 그렇게 생각했다. 게다가 그 사진을 숨기는 모습을 보니 틀림없었다. 문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혹시 내 사진이 아닐까' 하고 한편으로는 착각도 했었지만, 사진을 숨기고 창백해진 꼴을 보니 자기 사진은 절대 아니다. 분명 그놈 사진일 것이다. 그 무라야마 과장 놈의 면상.

소조가 의심을 품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새 신부 오하나는 무라야마 과장의 먼 친척으로, 오랫동안 그의 집에 얹혀살다가 인연이 닿아 소조가 아내로 맞이한 것이다. 중매를 선 사람은 두말할 것 없이 과장이었다. 과장이라지만 나이도 소조와 별 차이 안 나는 젊은 사내였고, 아내가 있긴 하지만 소문난 추녀라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 소조 자신이 남이 쓰던 걸 좋다고 덥석 물어온 건 아닌지, 이제 와서는 그것조차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또 하나 수상한 점은 오하나가 툭하면 무라야마의 집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결혼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소조가 아는 것만 해도 서너 번은 갔다. 어떨 때는 밤이 늦어서야 돌아온 적도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소조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가 또 엄청난 질투쟁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일단 아무렇지 않은 척 저녁 식사를 마쳤다. 평소처럼 농담을 주고받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사진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한 채 서재에 틀어박혀 있을 수도 없어서, 양쪽 다 묘하게 어색한 분위기로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이 이어졌다.

'대체 그게 누구 사진이냐?'
수도 없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말을 간신히 삼키며, 소조는 오하나의 행동을 가만히 감시했다. 질투가 심한 만큼 꽤 음흉한 구석이 있어서, 그의 속셈은 잠자리에 들 때 아내가 분명 그 사진을 어딘가에 숨길 테니 그곳을 확인해 두었다가 나중에 몰래 찾아내겠다는 것이었다.

​3
​이윽고 오하나는 말없이 일어나 살금살금 어딘가로 나갔다. 화장실 가는 방향은 아니다. 아무래도 창고방 쪽인 것 같다. 소조 자신은 볼품없는 말단 관리지만, 아버지가 하급 무사였던 터라 집만큼은 낡아도 널찍한 창고방이 있었다. 그럼 장롱에라도 숨기려는 걸까. 장롱이라 해도 여러 개가 있으니 나중에 찾으려면 알 수 없다. 어쨌든 오하나의 뒤를 밟는 게 최고다. 그래서 소조는 살그머니 일어나 아내의 뒤를 그림자처럼 쫓아갔다.

​예상대로 창고방이었다. 방금 들어간 참인지 아직 장롱 자물쇠를 달그락거리고 있다. 도대체 어느 장롱의 어느 서랍에 숨길까. 다행히 찢어진 창호지 구멍에 눈을 대고 살짝 엿보니, 워낙 두 방을 밝히는 5촉짜리 어두운 전구인 데다 구멍도 한쪽 눈만 겨우 댈 크기라 정확히 파악하기가 꽤 힘들었다. 그래도 어쨌든 입구에서 봤을 때 '정면에 있는 장롱의 맨 위, 왼쪽 끝 작은 서랍'이라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오하나의 뒷모습은 그곳에 무언가를 휙 던져 넣더니 문을 탁 닫고는 황급히 이쪽으로 올 것 같은 낌새였다.

​들키면 큰일이다 싶어 소조는 원래 있던 거실로 도망쳐 돌아왔고, 재빨리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고는 뻐끔뻐끔 피우며 시치미를 뚝 뗐다.
그 후 두 사람은 다시 어색하게 눈치만 보았지만 이래 봤자 끝이 없었기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래 씹는 듯한 무미건조한 세상 이야기를 두세 마디 나누었다. 이윽고 9시가 되자 소조는 꿍꿍이가 있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한밤중, 오하나의 숨소리를 살피며 이제 안심해도 되겠다 싶자, 소조는 벌떡 일어나 잠옷 앞섶을 여미고 살금살금 침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목적지는 두말할 것 없이 창고방이다. 겨우 도착해서 초저녁에 점찍어 둔 '정면 장롱 위 맨 왼쪽 작은 서랍'을 가슴을 두근거리며 열어보니... 있었다, 있어! 헛된 의심이 아니었다. 열몇 장의 크고 작은 사진들이 겹쳐 있는 맨 위에 무라야마 과장의 상반신 사진이 얄밉게 떡 하니 올려져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한 장 한 장 살펴봤지만, 남자 사진이라고는 무라야마 단 한 장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오하나의 친정 가족사진이었다.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확실해졌다. 이놈, 가만두지 않겠다. 분함과 추위에 소조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입맞춤_에도가와 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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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음 날, 소조는 말 한마디 없이 오하나가 내미는 도시락을 낚아채듯 받아 들고 씩씩거리며 관청으로 출근했다. 동료들 얼굴만 봐도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저 과장 놈 면상에 굽신거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놈이고 저놈이고 죄다 때려눕히고 싶은 심정이었다. 인사도 없이 자리에 앉아 뚱하게 입을 다문 채, 잔뜩 핏발 선 눈으로 아직 출근도 안 한 과장의 책상만 노려보았다.
​이윽고 세련된 양복 차림의 과장님이 커다란 서류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출근하셨다. 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제히 인사하는 것을 가볍게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가방이 책상 위에 툭 소리를 내며 놓였다. 소조는 당연히 인사 따위는 하지 않았다. 타는 듯한 눈빛으로 노려볼 뿐이었다.

무라야마 과장은 책상 위 정리를 대충 마치더니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분위기 파악도 못 한 채 불렀다.
"야마나 군. 잠깐 이리 와보지."
소조는 꾹 참고 대답을 안 할까 생각했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라,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과장 책상 앞으로 갔다. 물론 "무슨 일이십니까?" 같은 아부 섞인 말은 하지 않았다. 뚱한 표정으로 뻣뻣하게 서 있었다. 하지만 과장 쪽에서는 속사정을 모르니 평소처럼 잔소리를 시작했다.
"이보게, 이 통계는 좀 곤란한데. 제일 중요한 평균율이 빠져 있지 않나. 에잉, 자네 말이야."
보니 과연 이쪽 실수였다. 평소 같으면 아무 말 못 하고 물러났겠지만 오늘은 상황이 다르다. 심사가 잔뜩 뒤틀려 있었다. 대답도 안 하고 과장을 빤히 노려보았다.

"자네는 이 통계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친절하게 총계를 나열해 놨는데 그런 건 필요 없어. 평균율이 필요하단 말이야. 그 정도는 알 때도 되지 않았나?"
"아, 그러십니까!"
소조는 갑자기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더니, 서류를 홱 낚아채서 그대로 자기 자리로 돌아와 버렸다. 이제 막 진득하게 훈계를 시작하려던 과장은 눈만 껌벅거렸다.
​자리로 돌아온 소조는 뭔가를 미친 듯이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기특하게도 통계를 수정하는가 싶었지만 전혀 아니었다. 백지 한 장을 펼치고 굵은 글씨로 가장 먼저 쓴 말은, '사직서'.

​5
​어리둥절해하는 과장 앞에 초등학생이 정성껏 쓴 것 같은 큼지막한 글씨의 사직서를 집어 던지고 속을 뻥 뚫은 소조는 아직 오전 11시밖에 안 됐는데 당당하게 팔을 휘저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오하나, 잠깐 이리 와봐."
여느 때처럼 긴 화로 앞에 털썩 주저앉아 이제부터 담판을 지을 참이다. 어젯밤 일도 있고 해서 오하나는 이미 안절부절못했다.

"어머, 벌써 오셨어요? 어디 몸이라도 안 좋으신가요..."
"아니, 몸은 멀쩡해. 나 오늘부로 관청 그만둔다. 그렇게 알아. 그리고 내가 관청을 그만둔 이유는 그 무라야마 자식과 한판 붙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무라야마 집구석엔 발길을 뚝 끊어줬으면 해. 이건 단단히 지켜주지 않으면 곤란해."
"어머..."
오하나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 그리고." 소조는 아무렇지 않은 척 덧붙였다. "당신, 무라야마 사진 가지고 있지? 그거 잠깐 이리 가져와."

​남편의 기세가 너무 험악해 거절할 수도 없었다. 오하나는 마지못해 그 사진을 가져왔다. 소조는 오하나가 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그 사진을 갈기갈기 찢어 화로 속에 던져 넣었다. 그러고는 이제야 속이 후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지경이 되니 오하나도 눈치채지 않을 수 없었다. '아하, 그 일 때문이구나.' 대충 상황 파악이 끝났다. 그래서 일단 남편의 입에서 직접 얘기를 듣자 싶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여자 특유의 요령을 발휘해 토라진 척도 해보고 눈물도 흘려보며 온갖 수단을 동원해, 결국 문틈으로 엿본 일까지 다 털어놓게 만들었다.

​'어때, 이쯤 되면 할 말이 없겠지. 사진 숨긴 곳까지 싹 다 조사해 놨으니 무슨 변명을 해도 내 쪽에 빈틈은 없다.' 소조는 승리자의 기분으로 짐짓 여유롭게 오하나의 반응을 살폈다.
그런데 오하나가 갑자기 엉엉 울며 쓰러질 줄 알았더니 웬걸, 소조가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갑자기 쿡쿡 웃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어머, 전 또 무슨 일인가 했네. 여보, 당신도 참 너무하세요. 무라야마 씨랑 나랑... 호호호... 당신도 의심병이 꽤 심하시네요. 그 사진, 그거, 그거, 저기... 당신 사진이었잖아요!"
말을 마치자마자 오하나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내 사진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적당히 얼버무리려고 해도 소용없어. 창고방까지 쫓아가서 숨기는 곳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그 서랍엔 무라야마 사진 말고는 내 사진은커녕 남자 사진이라곤 단 한 장도 없었잖아!"
"그러니까 더 이상하죠. 그런 사진들이 잔뜩 있었다니. 틀림없이 당신이 잠결에 헛것을 보신 거예요. 당신 사진은 딱 한 장, 제가 서랍 속 작은 보관함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걸요. 도대체 당신이 봤다는 그 서랍이 어디인데요?"
"정면에 있는 장롱, 맨 위 왼쪽 끝 작은 서랍 말이야!"
"어머, 정면이요? 참 이상하네. 제가 어젯밤에 당신 사진을 넣은 곳은 '왼쪽' 벽에 있는 장롱이었어요. 맨 위 왼쪽 끝 서랍인 건 맞지만, 아예 장롱 자체가 다르다고요."
"그럴 리가 없어. 당신이 또 속이려는 속셈이지. 나는 작은 창호지 구멍으로 봤기 때문에 애초에 왼쪽 장롱은 보일 턱이 없었어. 무조건 정면 장롱이었다고. 아무리 급하게 봤기로서니 정면이랑 왼쪽 벽면, 완전히 방향이 다른 걸 헷갈릴 리가 없어."
"참 이상한 일이네요."
"이상할 거 없어. 당신이 무안하니까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거잖아. 쓸데없는 짓은 그만하지?"
"그게 아니라..."
"아니라니. 누가 뭐래도 내 눈은 못 속여!"
기묘한 실랑이가 벌어졌다. 남편은 방 정면 벽에 놓인 장롱이라고 우기고, 아내는 왼쪽 벽에 놓인 장롱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주장 사이에는 90도의 시각 차이가 있었다.

​6
​"아! 알았어요!"
갑자기 오하나가 소리쳤다.
"여보, 이리 좀 와 보세요. 알았어요, 알았어."
오하나가 막무가내로 소매를 잡아끄는 바람에 소조는 체념한 듯 끌려갔다. 도착한 곳은 창고방이었다.
"이거, 이거, 여보. 틀림없이 이거예요."
오하나가 그렇게 말하며 가리킨 것은 새로 산 양복장 하나였다. 작년 연말에 특별 보너스에 정기예금 이자까지 탈탈 털어 장만한 신식 양복장. 대체 그게 어떻다는 걸까.

"이제 아시겠어요? 자, 이 문에 달린 거울 말이에요. 이 문이 반쯤 열려 있어서 마침 창호지 구멍 바로 앞에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정면에 있는 장롱은 가려지고, 엉뚱한 왼쪽 장롱이 거울에 비쳐서 마치 정면에 있는 것처럼 보였던 거라고요."
​듣고 보니 그랬다. 양복장 문에 달린 거울이 창호지 구멍 앞에 45도 각도로 열려 있었다면, 거울에 비친 왼쪽 장롱이 정면처럼 보였을 것이다. 두 장롱의 생김새도 비슷해서 헷갈리는 게 무리도 아니었다. 게다가 어두침침한 전구 불빛 아래서, 그것도 황급히 엿보았으니 말이다.
'내가 단단히 헛다리를 짚은 건가.' 소조는 기가 막혀서 맥이 탁 풀렸다.

다른 남자 사진이라고 착각한 게 엄청난 오해였고, 오하나가 남편 소조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남편 사진에 입을 맞추고 껴안았던 것이라면, 이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없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좋아해야 할 상황에, 엄한 곳에 화풀이하고 돌이킬 수 없는 사직서까지 던져버리다니.
​자, 이제 주객전도다. 단숨에 불리한 상황을 뒤집은 오하나는 이번에야말로 진짜 엉엉 울기 시작했다.
관청을 그만두고 내일부터 어쩔 작정이냐고. 이 불경기에 당장 일자리가 뚝딱 생길 리도 없고, 그렇다고 평생 놀고먹을 팔자도 아니면서 당신 참 너무 대책 없다고. 게다가 내가 무라야마 씨 댁에 드나든다고 화를 내셨지만, 그게 다 당신 출세시키려고 그런 거 아니냐고. 누가 그런데 굽신거리면서 먼저 가고 싶겠냐고. 남의 속도 모르고. 하며 원망하고, 한탄하고, 탄식했다. 아주 가관이었다.

​야마나 소조, 이제 와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뿐이랴, 당장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질투란 참으로 몹쓸 짓이구나." 그는 뼈저리게 탄식했다.
​하지만 독자 여러분. 남자라는 생물은 겉보기엔 좀 속 좁고 음흉해 보여도 뼛속까지 순진해 빠진 구석이 있다. 반대로 여자라는 생물은 겉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소녀 같아 보여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태생적으로 교활함이 둥지를 틀고 있는 법이다. 이 오하나 역시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 그대로의 여자인지 아닌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만약 그 '거울 트릭'이 그녀가 꾸며낸 창작이었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녀가 입을 맞추고 껴안았던 것이, 역시 무라야마 과장의 사진이 맞았다면 어떨까?
그건 그렇다 치고, 어쨌든 남자인 야마나 소조에게는 거기까지 의심의 나래를 펼칠 만한 음흉함은 없었던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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