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아나의 한마디☆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순간, 우리는 가장 거대한 거짓을 마주하게 됩니다. 에도가와 란포의 『도난』은 단순히 사라진 돈의 행방을 넘어, 인간이 가진 믿음의 허실을 예리하게 파고듭니다. 진실과 기만의 경계에서 길을 잃는 기묘한 쾌감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도난 (盗難) 소설 전문 (全文)
에도가와 란포 (江戸川 乱歩)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제 경험담인데요. 이걸 잘 다듬으면 좋은 추리 소설이나 이야기 소재가 될지도 모릅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아, 꼭 해달라고요? 그럼 제가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 듣기 거북하시겠지만, 한번 이야기해 볼까요.
절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렇게 미리 말씀드리는 이유는, 제가 이 이야기를 지금까지 여러 번 사람들에게 해줬는데, 너무 소설처럼 재미있게 꾸며진 것 같아서 "너, 그거 어디 소설책에서 읽고 온 거 아니냐?"라며 대다수 사람들이 믿어주질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지금이야 이런 변변찮은 일을 하고 있지만, 3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종교계에 몸담았던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니 제법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사실 별거 아닙니다. 그리 내세울 만한 종교도 아니었거든요. OO교라고 해서, 아마 아나운서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텐리교나 금광교 같은 신흥 종교의 친척뻘 되는 곳입니다. 물론 그 종파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나름대로 거창한 교리가 있긴 하지만요.
본산이라고 할 만큼 거창한 건 아니어도, 그 종교의 본가는 OO현에 있고 웬만큼 큰 동네에는 대개 지부가 하나씩 있었습니다. 제가 있던 곳은 N시의 지부였습니다. N시 지부는 수많은 지부 중에서도 꽤 잘나가는 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의 주임(종단에서는 꽤 거창한 직함으로 부르지만, 그냥 주임이라고 하겠습니다)이 제 고향 사람이라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이 사람이 수완이 아주 뛰어났거든요. 그렇다고 종교적으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건 아니고, 뭐랄까, 사업 수완이 뛰어났다고 할까요. 종교에 사업 수완이라니 좀 이상하지만, 신도를 늘리고 기부금을 모으는 솜씨는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대로, 저는 그 주임과 고향 인연으로... 그게 몇 년 전이더라. 음, 제 나이 스물일곱 때니까, 네, 딱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이네요. 그곳에 얹혀살게 되었습니다. 하던 일에서 작은 실수를 하는 바람에 직장을 잃었고, 당장 어쩔 도리가 없어서 임시방편으로 까놓고 말해 식객 노릇을 시작한 거죠. 그런데 도무지 발을 뺄 수가 없어서, 빈둥빈둥 지내는 사이에 점점 종교 일에도 익숙해지고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심부름을 맡다 보니, 결국엔 그 교회의 잡무 담당으로 아예 눌러앉게 된 겁니다. 거기서 거의 5년이나 있었으니까요.
물론 제가 신도가 된 건 아닙니다. 애초에 신앙심도 부족한 데다 내막을 다 알아버렸거든요. 겉으로는 점잔을 빼며 설교하는 주임이 뒤로 돌아가면 술 마시고, 여자 꽁무니를 쫓고, 부부싸움이 끊이질 않는 꼴을 보는데 어떻게 신앙심이 생기겠습니까. 수완가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겠지만, 주임이란 작자가 딱 그런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도들은, 그런 신흥 종교의 신도들은 또 유별납니다. 광신도 같은 사람이 많아요. 일반 절은 잘 모르겠지만, 기부 같은 것도 아주 통 크게 합니다. 저같이 신앙심 없는 사람 눈에는 '어떻게 저렇게 아낌없이 돈을 갖다 바칠까' 싶을 정도로 신기할 따름이죠. 그러니 주임의 씀씀이도 당연히 사치스러웠습니다. 신도들에게서 긁어모은 돈으로 주식 투자까지 손을 댈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원래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이라 지금까지 똑같은 일을 2년 이상 계속해 본 적이 없는데, 그런 제가 5년이나 버텼다는 건 그만큼 저한테도 떨어지는 떡고물이 많아서 지내기 편했기 때문이겠죠. 그럼 왜 그런 좋은 일자리를 그만뒀느냐? 자,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그 교회의 설교소는 지은 지 십수 년이나 지나서 제가 갔을 무렵에는 꽤 낡고 지저분해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주임이 부임한 이후 신도가 갑자기 늘어나 공간도 비좁아졌죠. 그래서 주임은 설교소를 증축해서 넓히고 낡은 곳을 수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다고 적립금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본부에 요청해 봤자 약간의 보조금은 주겠지만 증축 비용 전액을 내줄 리는 만무했습니다. 결국 신도들에게 기부금을 모으는 수밖에 없었죠. 비용이라고 해봤자 증축이니까 1만 엔이 채 안 들겠지만, 시골 지부에서 그만한 기부금을 모으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만약 주임에게 앞서 말한 사업 수완이 없었다면 아마 그렇게 잘 풀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주임이 기부금을 모은 수법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이러면 완전히 사기죠. 먼저 신도 중 최고의 부자, N시에서도 손꼽히는 상가의 은퇴한 어르신이었는데, 그 노인을 상대로 신령님한테서 꿈에 계시가 있었다느니 뭐니 거드름을 피우며 감언이설로 구슬려서, 기부자 명단 최상단에 3천 엔인가를 내게 만든 겁니다. 이런 일에는 정말 귀신같은 솜씨였으니까요. 자, 이 3천 엔이 미끼가 되는 겁니다. 주임은 그 돈을 현금 그대로 비치된 소형 금고 안에 넣어두고는, 신도들이 올 때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기특한 일입니다. 아무개 님은 벌써 이렇게 거금의 기부금을 내셨습니다."
그렇게 돈을 과시하면서 동시에 그럴싸한 꿈의 계시 이야기를 꺼내니, 다들 거절하지 못하고 분수에 맞게 기부를 하는 겁니다. 그중에는 애지중지 모아둔 비상금을 털어서 신앙심을 증명하려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눈 깜짝할 사이에 기부금 액수가 불어나더군요. 생각해 보면 세상에 그보다 쉬운 장사도 없습니다. 열흘 만에 5천 엔이나 모였으니까요. 이대로라면 한 달도 안 돼서 예상했던 증축 비용을 거뜬히 모을 수 있을 거라며 주임은 아주 싱글벙글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느 날 주임 앞으로 아주 묘한 편지 한 통이 날아온 겁니다. 이야기에서는 하나도 신기할 게 없겠지만, 실제로 그런 편지를 받으면 꽤 당황스럽거든요. 내용인즉슨 이랬습니다.
"오늘 밤 12시 시계 종소리를 신호 삼아, 귀하의 수중에 모인 기부금을 가지러 가겠소. 준비해 두시길."
꽤나 괴짜 같은 놈도 다 있지, 도둑질을 예고해 온 겁니다. 어떻습니까? 재미있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그때 저는 얼굴이 새파래졌습니다. 방금 말씀드렸듯이 기부금은 전부 현금으로 금고에 들어있었고, 그걸 수많은 신도들에게 자랑하듯 보여주었으니, 지금 교회에 큰돈이 있다는 사실이 알 만한 사람들에게는 다 퍼져있었던 거죠. 혹시라도 나쁜 놈 귀에 들어가지 않았으리란 보장도 없고요. 그러니 도둑이 드는 건 이상할 게 없지만, 시간까지 예고해 온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잖아요.
주임은 "에이, 누군가의 장난이겠지" 하며 태연했습니다. 듣고 보면, 장난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일부러 조심하라고 편지까지 보내는 도둑이 있을 리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치로는 그렇다 쳐도 저는 왠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잠시 이 돈을 은행에 맡겨두는 게 어떻겠냐고 주임에게 권해봤지만, 들은 척도 안 하더군요. 그럼 최소한 경찰에 신고라도 해두자고 간신히 주임을 설득해서 제가 서에 가게 되었습니다.
오후가 막 지난 시간이었죠. 채비를 하고 밖으로 나와 경찰서 쪽으로 한 블록쯤 갔을 무렵, 마침맞게 건너편에서 4, 5일 전에 호구조사를 나와 얼굴을 익혀둔 경찰관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길래, 그 사람을 붙잡고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콧수염을 기른 아주 험상궂은 인상의 순경이었는데, 제 이야기를 듣더니 대뜸 웃음을 터뜨리는 거 아닙니까.
"어이구, 선생님은 세상에 그런 얼빠진 도둑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하하! 한 방 제대로 속으신 겁니다, 속으셨어요."
얼굴은 무서워도 성격은 꽤 호탕한 사람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왠지 영 찜찜해서 견딜 수가 없으니, 만약을 위해 한 번 조사를 좀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물러서지 않고 말하자, 경찰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럼 말이죠, 마침 오늘 밤에 제가 그 근처를 순찰하게 되어 있으니, 그 시간쯤에 한번 들러서 살펴봐 드리죠. 물론 도둑 같은 건 오지 않겠지만요, 어차피 지나는 길이니까요. 차나 한잔 끓여 두십시오. 하하하."
어디까지나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눈치였습니다. 그래도 와주겠다고 하니 저도 마음을 놓고, 부디 잊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한 뒤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도난_에도가와 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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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날 밤입니다. 평소 같으면 야간 설교가 없는 한 밤 9시쯤이면 잠자리에 들었을 텐데, 오늘 밤은 왠지 신경이 쓰여서 잘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순경과 한 약속도 있어서 차와 다과를 준비시켜 놓고, 안쪽 방(신도들의 응접실로 쓰이던 곳) 책상 앞에 앉아 12시가 되기만을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묘한 것이, 벽감에 놓인 금고에서 눈을 뗄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다 스르르 안에 있는 돈만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래도 은근히 걱정이 됐는지 주임도 이따금 그 방으로 와서 제게 농담을 건네곤 했습니다. 왠지 밤이 지독히도 길게 느껴졌습니다. 이윽고 12시가 가까워지자, 기특하게도 약속을 어기지 않고 낮에 만난 그 경찰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곧장 안으로 모셔서, 금고 앞에서 주임과 경찰과 저, 이렇게 셋이 둥글게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며 망을 보기로 했습니다. 아니, 망을 보려고 했던 건 아마 저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주임도 경찰도 낮에 온 편지 따윈 아예 안중에도 없었으니까요. 경찰 아저씨는 꽤나 달변가라, 주임을 붙잡고 성대하게 종교 논쟁을 벌였습니다. 마치 그런 토론을 하러 온 사람처럼 말이죠. 하긴 캄캄한 밤거리를 터덜터덜 순찰하는 것보다는 차를 마시며 토론하는 편이 훨씬 즐거울 테니까요. 왠지 저 혼자 끙끙대며 걱정하고 있는 게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잠시 후, 떠들고 싶은 만큼 다 떠든 경찰이 문득 생각난 듯 제 얼굴을 보며 말했습니다.
"아, 벌써 12시 반이네요. 거 보십시오, 역시 장난이었죠?"
그러자 저도 조금 머쓱해져서 "네, 덕분에요."라며 얼버무렸는데, 순경이 금고 쪽을 보며 이렇게 묻는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돈은 확실히 저 안에 들어있는 거겠죠?"
저는 놀림을 받는 것 같아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물론 들어있죠. 원하시면 보여드릴까요?" 하고 비꼬듯 되받아쳤죠.
"아니, 들어있으면 다행입니다만. 만약을 위해서 한 번 확인해 두는 편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하하하."
경찰은 끝까지 장난을 치더군요. 저는 이제 짜증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그렇게 말하며 금고 다이얼을 돌려 문을 열고, 안에서 지폐 다발을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남자가 이러는 겁니다.
"그렇군요, 그곳에 있으니 완전히 안심하셨군요."
제대로 흉내 낼 순 없지만, 그건 정말 기분 나쁜 말투였습니다. 뭔가 뼈가 있는 듯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거든요.
"하지만 도둑에게 어떤 수단이 있을지 모르는 법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돈이 있으니 안심하고 계시겠지만, 이것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놓여있던 지폐 다발을 집어 들었습니다. "이것은 이미 진작에 도둑의 손에 넘어갔을지도 모릅니다."
그 말을 듣자 저는 나도 모르게 오싹하며 몸서리를 쳤습니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소름 끼치는 기분이었죠. 이렇게 말해서는 잘 와닿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지만요.
몇십 초 동안, 저희는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서로 상대방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무언가를 탐색하고 있었던 겁니다.
"하하하, 이제 아셨습니까?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돌연 경찰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지폐 다발은 손에 쥔 채로요.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주머니에서 꺼낸 권총을 쥐고 빈틈없이 저희 쪽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정말 얄밉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경찰 흉내를 내며 "실례하겠습니다"라고 말하다니요. 어지간히 배짱이 두둑한 놈이었죠.
물론 주임도 저도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간담이 서늘해졌거든요. 호구조사를 핑계로 찾아와 미리 얼굴을 익혀둔다는 신종 수법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요. 진짜 경찰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놈은 그대로 방 밖으로 나갔는데, 돌아가나 싶었더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나간 미닫이문을 아주 조금 열어두고, 그 틈 사이로 권총 총구를 저희 쪽으로 겨눈 채 가만히 있는 겁니다. 오랜 시간 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권총 위쪽 틈새로 괴한의 외눈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 눈치채셨습니까? 과연 전문가답네요. 맞습니다. 문틀 못에 얇은 끈으로 권총을 매달아 놓고서, 마치 사람이 조준하고 있는 것처럼 꾸며 놓았던 겁니다. 하지만 그 당시 저희에게 그런 걸 생각할 여유 따위가 있었겠습니까. 당장이라도 탕! 하고 쏘지 않을까 하는 공포심으로 꽉 차 있었으니까요. 한참 뒤에 주임의 부인이 권총이 보이는 그 미닫이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겨우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우스웠던 건, 그렇게 돈을 훔쳐 가는 가짜 경찰을 주임의 부인이 현관까지 정중히 배웅했다는 사실입니다. 도둑이 큰소리를 내거나 소란을 피운 것도 아니니, 거실에 있던 부인은 상황을 전혀 몰랐던 거죠. 거실 앞을 지나갈 때 괴한은 "방해 많았습니다"라며 태연하게 부인에게 인사까지 건넸다고 합니다. "어머나, 배웅도 못 해드려서 어쩌죠"라며 부인도 속으로 좀 이상하게 생각하긴 했지만, 아무튼 직접 현관까지 배웅했다는 겁니다. 참, 웃어넘길 일이죠.
그러고 나서 자고 있던 고용인들까지 깨어나서 큰 소동이 벌어졌지만, 그때쯤 도둑은 벌써 1킬로미터도 넘게 도망쳤을 시간이었죠.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대문 앞까지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밤거리를 좌우로 살펴보며, 저쪽으로 도망갔네 이쪽으로 도망갔네 하며 쓸데없는 실랑이로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늦은 밤이라 양쪽 상가들도 문을 다 닫아걸어 거리는 칠흑같이 어두웠습니다. 네 집에 하나, 혹은 다섯 집에 하나꼴로 둥근 처마등만 드문드문 쓸쓸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죠. 그런데 건너편 골목에서 불쑥 검은 그림자가 하나 나타나 이쪽으로 다가오는데, 아무래도 경찰 같아 보였습니다. 저는 그걸 보자마자 방금 전 그 도둑이 우리에게 앙갚음하려고 다시 돌아온 게 아닌가 싶어 흠칫 놀랐습니다. 그래서 엉겁결에 주임의 팔을 꽉 잡고 말없이 그쪽을 가리켰습니다.
하지만 그건 도둑이 아니라, 이번에는 진짜 경찰이었습니다. 그 경찰이 우리가 왁자지껄 떠드는 걸 이상하게 여겼는지 무슨 일이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주임과 제가 "마침 잘 오셨습니다, 이야기 좀 들어보십시오"라며 도난당한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경찰이 하는 말이, 지금 당장 뒤쫓아 가봤자 소용없으니 자신이 지금 당장 서로 돌아가 비상경계망을 치도록 조치하겠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건 가짜 경찰이 틀림없지만, 그런 복장을 하고 있으면 남의 눈에 띄기 쉬우니 무조건 잡힐 거라며 안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도난 금액과 도둑의 인상착의 등을 자세히 캐묻고 수첩에 적더니, 부리나케 자기가 온 길로 되돌아갔습니다. 경찰의 말투만 들으면 금방이라도 도둑을 잡아 돈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저희도 아주 든든하게 생각하고 한시름 놓았습니다만, 세상일이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하던가요.
오늘은 경찰에서 연락이 올까, 내일은 빼앗긴 돈이 돌아올까 하며 그 당시에는 매일 그 이야기만 나눴습니다. 그런데 닷새가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도통 소식이 없는 겁니다. 물론 그사이 주임이 수시로 경찰서에 드나들며 상황을 묻곤 했지만, 돈은 영 돌아올 기미가 안 보였습니다.
"경찰 놈들 정말 냉담하군. 저따위 태도로는 도둑을 절대 못 잡아."
주임은 점점 경찰의 일 처리에 정나미가 떨어져서, 형사 주임이 건방지다느니, 요전번 그 순경이 그렇게 장담을 해놓고는 요즘 내 얼굴만 보면 피해 다닌다느니 하며 온갖 불평을 늘어놓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지만 역시 도둑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신도들도 모임을 열어 난리를 피웠지만, 그런 종교의 신도들이다 보니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뾰족한 묘안도 나오지 않았죠. 그래서 도둑맞은 건 도둑맞은 걸로 치고 경찰에 맡겨둔 채, 다시 기부금 모금에 착수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임의 능수능란한 말솜씨 덕분에 꽤 성과를 올려, 결국 목표에 가까운 기부금이 모여 증축 공사는 계획대로 잘 진행되었습니다만... 그건 이 이야기와 상관이 없으니 생략하도록 하죠.
자, 도난 사건이 일어나고 두 달쯤 지난 어느 날의 일입니다. 저는 볼일이 좀 있어서 A시에서 20km 정도 떨어진 Y마을까지 간 적이 있습니다. Y마을에는 근방에서도 유명한 사찰이 있는데, 마침 제가 갔던 날이 일 년에 한 번 있는 성대한 법회가 시작되는 날이라서 일주일 내내 사찰 주변 일대가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곡예사나 야바위꾼들의 가건물이 몇 개나 세워져 있고, 온갖 먹거리와 장난감 노점들이 길게 늘어서서 북적북적 엄청난 난리통이었죠.
볼일을 마친 저는 딱히 서둘러 돌아갈 필요도 없었고, 계절도 화창한 봄날이겠다, 흥겨운 음악과 사람들의 목소리에 이끌려 무심코 그 번화가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이쪽저쪽 구경거리와 장사꾼들을 사람들 등 뒤에서 기웃거리며 돌아다녔죠.
그게 뭐였더라, 아마 치통 약을 파는 약장수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덩치 큰 남자가 굵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무언가 떠들고 있는 모습이 빽빽한 사람들의 머리 틈 사이로 보였습니다. 그게 무척 재미있어 보여서, 저는 사람들의 큰 원을 따라 이리저리 가장 잘 보일 만한 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구경꾼들 틈에 섞여 있던 촌뜨기 신사 풍의 남자 한 명이 휙 뒤를 돌아봤는데, 그 얼굴을 본 순간 저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도망칠 뻔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남자의 얼굴이 언젠가 본 그 도둑과 똑같이 생겼었거든요.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경찰로 변장했을 때는 코밑부터 턱까지 수염이 덥더룩했는데, 지금은 말끔하게 깎여 있다는 점뿐이었습니다. 어쩌면 그건 인상을 바꾸기 위해 붙인 가짜 수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한 번은 도망치려고 자세까지 잡았지만 상대방의 동태를 가만히 살펴보니, 딱히 저를 알아챈 눈치도 아니었고 다시 앞을 향한 채 조용히 약장수의 연설을 듣고 있길래 일단 안심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 조금 떨어진 천막 친 오뎅 장수 뒤에서 몰래 그 남자를 주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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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가슴은 이미 콩닥콩닥 뛰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론 두렵고, 한편으론 도둑을 찾아냈다는 기쁨 때문이었죠. 어떻게든 이놈의 뒤를 밟아 거처를 알아내고 경찰에 신고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약 도둑맞은 돈이 일부라도 남아있다면 주임을 비롯한 신도들이 얼마나 기뻐할까.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제가 연극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묘한 흥분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며 이 남자가 정말 그때 그 도둑이 맞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사람을 잘못 봤다가는 큰일이니까요.
잠시 기다리자, 남자는 무리에서 벗어나 어슬렁어슬렁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일행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는데, 아까부터 그 남자 옆에 비슷한 옷차림의 남자가 서 있던 게 친구였던 모양입니다. '뭐, 혼자든 둘이든 뒤를 밟는 건 마찬가지지'라며 저는 들키지 않게 조심하면서, 인파가 많았으므로 대여섯 걸음 간격을 두고 그들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누군가를 미행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이게 참 어려운 일이더군요. 너무 조심하면 놓칠 것 같고, 안 놓치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제 몸을 위험에 노출시켜야 하니, 소설에서 읽는 것 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한 2, 3백 미터쯤 가서 어느 요릿집으로 들어갔을 때, 저는 크게 안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들이 요릿집에 막 들어가려던 찰나, 저는 또다시 엄청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글쎄, 두 사람 중 도둑이 아닌 쪽 남자의 얼굴이, 놀랍게도 그때 도둑을 잡아주겠다고 했던 그 두 번째 경찰과 똑같이 생긴 거 아니겠습니까!
아니, 잠깐만요. 아무리 당신이 뛰어나셔도, 거기서 바로 모든 걸 다 눈치채시다니 너무 빠르십니다. 아직 뒷이야기가 더 남아있으니 조금만 더 참고 들어보시죠.
자, 두 남자가 요릿집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저는 어떻게 했느냐. 이게 만약 소설이라면 그 요릿집 여종업원에게 팁을 쥐여주고 두 사람의 옆방으로 안내받아 미닫이문에 귀를 대고 대화 내용을 엿듣는 장면이겠지만, 우습게도 그때 저는 요릿집에 들어갈 만한 돈이 없었습니다. 지갑 안에는 기차 왕복표 반쪽과 1엔도 채 안 되는 돈밖에 없었거든요. 그렇다고 너무 기막힌 상황이라 경찰에 신고할 결단도 서지 않았고, 또 그러는 사이에 그들이 도망갈까 봐 걱정도 되어서, 참 고생스럽게도 요릿집 앞을 하염없이 지키고 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이건 처음에 왔던 경찰이 가짜였던 것처럼, 나중에 온 경찰도, 그러니까 그 도둑을 잡아주겠다고 했던 순경도 가짜였다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교묘하게 머리를 썼더군요. 앞부분 속임수는 흔히 있는 수법이라 그리 신기할 것도 없지만, 뒷부분, 즉 가짜 다음에 또다시 가짜를 내세우는 수법은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짠 겁니다. 똑같은 속임수가 두 번이나 겹쳐 있을 줄은 쉽게 상상도 못할뿐더러, 게다가 상대방이 경찰 제복을 입고 나타났으니 '이번에야말로 진짜겠지'라며 누구나 방심하게 되니까요. 이렇게 해두면 진짜 경찰에 발각되는 건 한참 뒤의 일이 될 테니 충분히 멀리까지 달아날 수 있었겠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다 문득 깨달은 건, 만약 그 두 놈이 한패라고 치면 앞뒤가 안 맞는 점이 하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바로 그 점입니다. 주임이 그 후로도 경찰에 수시로 진행 상황을 물으러 갔으니 나중에 온 경찰이 가짜였다면 당장 들통났을 터입니다. 자, 저는 대체 뭐가 뭔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한 시간쯤 기다렸을까요. 이윽고 두 사람은 얼굴이 벌게져서 요릿집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들의 뒤를 밟았습니다. 그들은 번화가를 벗어나 점점 인적이 드문 곳으로 걸어갔는데, 어느 골목길 모퉁이에 다다르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거기서 헤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누구의 뒤를 쫓을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돈을 가져간 쪽, 즉 처음 발견했던 남자를 미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취한 탓에 약간 비틀거리며 마을 외곽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주변은 갈수록 으슥해져서 미행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50미터 남짓 뒤에서 가급적 처마 밑 그늘진 곳을 골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따라갔습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인가 하나 없는 마을 외곽까지 다다르고 말았습니다. 앞을 보니 자그마한 숲이 하나 있고, 그 안에 무슨 사당 같은 게 모셔져 있는, 이른바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숲 같은 곳이었는데, 남자가 거침없이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왠지 으스스해졌습니다. 설마 그놈의 집이 그 숲속 깊은 곳에 있을 리도 없고요. 차라리 단념하고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모처럼 여기까지 미행해 온 걸 이제 와서 그만두기도 아쉬워서, 저는 용기를 내어 계속 남자의 뒤를 밟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숲속으로 한 발짝 내디딘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기겁을 하며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저 멀리 앞서가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남자가 뜻밖에도 커다란 나무 기둥 뒤에서 불쑥 튀어나와 제 눈앞에 우뚝 서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는 교활한 미소를 띠며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장이라도 덮치지 않을까 싶어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는데, 간담이 서늘해진 저에게 상대방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아, 오랜만이네."
마치 친구라도 만난 듯한 말투로 말을 건네는 겁니다. 허, 세상에 이렇게 뻔뻔한 놈도 다 있나 싶어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한 번 인사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어." 그놈이 말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통쾌하게 당했거든. 천하의 나라도 너희 대장한테 보기 좋게 한 방 먹었지 뭐야. 자네, 돌아가면 안부 좀 전해주게나."
당연히 무슨 소린지 영문을 알 수 없었죠. 제 표정이 어지간히 이상했던 모양입니다. 그놈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습니다.
"이거 참, 너까지 속고 있었던 거냐? 놀랍군. 그거 전부 위조지폐였어. 진짜 돈이었으면 5천 엔이나 됐을 테니 꽤 괜찮은 건수였겠지만, 꽝이었지. 다들 기가 막히게 잘 만든 가짜였다고."
"뭐, 위조지폐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딨어!" 저는 무심코 소리쳤습니다.
"하하하, 깜짝 놀랐나 보네. 정 못 믿겠으면 증거를 보여줄까? 자, 여기 한 장, 두 장, 세 장. 300엔이야. 다른 사람들에게 다 나눠주고 이제 이것밖에 안 남았어. 자세히 봐봐. 아주 정교하지만 죄다 가짜니까."
그놈은 지갑에서 100엔짜리 지폐를 꺼내 제게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넌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서 내 거처를 알아내려고 쫓아왔겠지만, 그랬다간 큰일 난다. 너희 대장 신상에 말이야. 신도들을 속여서 뜯어낸 기부금을 위조지폐로 바꿔치기한 놈이랑, 그걸 훔친 놈 중에 어느 쪽 죄가 더 무거울지 말 안 해도 알겠지? 자네, 이쯤에서 돌아가는 게 좋을걸. 돌아가면 대장한테 꼭 전해줘. 내가 조만간 답례하러 가겠다고 했다고 말이야."
그 말을 남긴 채 남자는 휑하니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는 100엔짜리 석 장을 손에 쥔 채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과연, 그랬던 거군. 이제야 모든 이야기의 아귀가 들어맞았습니다. 방금 전 두 사람이 한패였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죠. 주임이 경찰에 수시로 상황을 알아보러 갔다는 건 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던 겁니다. 그렇게 둘러대지 않으면 정말로 경찰이 개입해서 도둑이 잡힐 테고, 그러면 위조지폐라는 사실이 들통나 버릴 테니까요. 예고 편지가 왔을 때도 놀라지 않았던 게 당연합니다. 가짜 돈이라면 무서울 게 없었겠죠. 그나저나 사기꾼 기질이 다분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런 악질적인 범죄까지 저지르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인간, 어쩌면 예의 그 주식 투자에 손을 댔다가 쫄딱 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디선가 위조지폐를 구해 와서는 (은밀한 뒷거래로 정교한 걸 구할 수 있다고 하니까요) 저나 신도들 앞을 적당히 모면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죠. 그러고 보니 짐작 가는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신도들 입에서 경찰로 새어 나가지 않은 게 용할 지경이네요. 저는 도둑에게 사실을 전해 듣기 전까지 그걸 눈치채지 못했던 제 어리석음에 화가 나서, 그날은 집에 돌아와서도 하루 종일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로는 모든 게 왠지 이상하게 꼬여버렸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오래 알고 지낸 주임의 악행을 까발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입을 다물고 있긴 했지만, 어쩐지 마음이 영 편치 않았습니다. 이전까지는 그저 행실이 나쁜 사람이다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이런 무서운 사실을 알고 나니 단 하루도 교회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 후 얼마 안 가 다른 일자리를 구했고, 곧바로 사직서를 내고 교회를 나왔습니다. 도둑질의 하수인이 되는 건 딱 질색이니까요. 제가 교회를 떠나게 된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직 이야기가 남아있습니다.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 같다고 하는 건 바로 이 대목 때문입니다. 위조지폐라던 그 300엔 말인데요, 기념으로 남겨둘까 해서 그 후로도 쭉 지갑 맨 밑바닥에 넣어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제 아내가 (이곳으로 와서 얻은 아내입니다) 그중 한 장을 위조지폐인 줄 모르고 월말 결제에 써버린 겁니다. 하필 그때가 보너스 달이라, 저 같은 가난뱅이의 지갑에도 제법 목돈이 들어있을 시기였으니 아내가 착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죠. 그런데, 놀랍게도 그 돈이 아무 문제 없이 통용되어 버린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어떻습니까, 제법 재미있는 이야기죠? 아, 어떻게 된 영문이냐고요? 글쎄요, 그 후로 따로 알아본 적이 없어서 지금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제가 가지고 있던 300엔이 가짜 돈이 아니었다는 사실만은 틀림없습니다. 나머지 두 장도 잇달아 아내의 봄옷 값으로 써버렸을 정도니까요.
그 도둑놈, 사실은 진짜 돈을 훔쳐놓고는 제 미행을 따돌리기 위해 진짜 돈을 가짜라고 속여 저를 농락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아낌없이 돈을 툭 던져주면, 그것도 10엔, 20엔 같은 푼돈이 아니었으니 누구라도 순간 깜빡 속아 넘어가겠죠. 당장 저만 해도 도둑의 말을 그대로 믿어버리고 특별히 더 조사해 볼 생각조차 안 했으니까요.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주임을 의심했던 건 정말 미안한 일이 됩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도둑을 잡아주겠다고 했던 그 순경 말입니다. 그 사람은 도대체 진짜였을까요, 가짜였을까요? 제가 주임을 의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그 순경이 도둑과 함께 요릿집으로 들어갔기 때문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남자는 진짜 경찰이면서 나중에 도둑에게 매수당했던 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어쩌면 직무상 눈독을 들인 남자와 어울리며, 말하자면 잠복수사를 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고요. 주임의 평소 행실이 워낙 막장이다 보니 저는 무심코 그런 식으로 단정 지어버렸던 거지만요.
그 밖에도 아직 여러 가지 추리가 가능합니다. 예컨대 도둑놈이 위조지폐인 줄 알고 무심코 다른 진짜 돈을 제게 건네주었다고 생각 못 할 것도 없으니까요. 참, 결말이 너무 흐지부지해서 이야기의 마무리가 안 된 것 같습니다만, 뭐 어떻습니까. 아나운서님께서 낭독 콘텐츠나 소설로 각색하신다면, 이 중 하나를 결말로 정해버리시면 그만입니다. 어느 쪽이든 꽤 재미있지 않습니까? ...어쨌든 결론적으로, 저는 도둑에게 받은 돈으로 마누라 봄옷을 장만한 셈이네요. 하하하하하.(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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