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9일 수요일

(소설 원고) [한 장의 기차표(영수증)_에도가와 란포] 전문(全文) 수록 [일본 미스터리 소설] 에도가와 란포 '한 장의 기차표(영수증)' - 한 장의 기차표는 사랑의 복수인가, 완벽한 알리바이인가? | 원아나의 책 읽는 TV 꿀잠 오디오북



 

소설 텍스트(원고)전문(全文) 

한 장의 기차표 (영수증)
​에도가와 란포

​상 (上)

​"아니,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 그건 최근에 일어난 꽤 드문 사건이었으니까. 세상 사람들은 다 그 소문으로 떠들썩하잖아. 하지만 아마 자네만큼 자세히 알지는 못할 거야. 이야기 좀 해 주지 않겠나?"
한 청년 신사가 이렇게 말하며,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깃조각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럼, 한 번 얘기해 볼까. 어이, 웨이터. 여기 맥주 한 잔 더."
단정한 옷차림과는 어울리지 않게 머리를 덥석덥석 길러둔 상대방 청년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때는 19XX년 10월 10일 오전 4시, 장소는 OO 마을 외곽, 도미다 박사 저택 뒤편 철도 선로. 여기가 무대야. 늦가을(아니, 가을이려나,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의 정적을 깨고 상행 제O호 열차가 맹렬히 달려왔다고 생각해 보게.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갑자기 날카로운 기적 소리가 울리더니 비상 브레이크로 열차가 급정거했어.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차가 멈추기 전에 한 부인이 치여 죽고 말았지. 내가 그 현장을 직접 봤다네.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정말이지 끔찍한 기분이었어.
그 사람이 바로 문제의 박사 부인이었던 거야. 차장의 긴급 신고로 관할 경찰들이 달려오고 구경꾼들이 모여들었지. 그사이 누군가 박사 저택에 소식을 알렸고, 깜짝 놀란 주인 박사와 하인들이 뛰어나왔어. 마침 그 소동이 벌어지던 와중에, 자네도 알다시피 당시 OO 마을에 놀러 와 있던 내가 평소 습관대로 이른 아침 산책을 하던 길에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게 된 거지. 이윽고 검시가 시작됐어. 경찰의로 보이는 사내가 상처 부위를 조사했지. 대충 조사가 끝나자 시신은 곧바로 박사 저택으로 옮겨졌어. 구경꾼들 눈에는 사건이 아주 간단하게 마무리된 것처럼 보였을 거야.

​내가 직접 본 건 여기까지야. 나머지는 신문 기사들을 종합하고 거기에 내 상상을 덧붙인 이야기니까, 그런 줄 알고 들어주게. 자, 경찰의의 소견에 따르면 사인은 물론 역사(轢死, 열차에 치여 죽음)이고, 오른쪽 허벅지가 밑동부터 절단된 것이 원인이라는 거야. 그런데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는 아주 유력한 단서가 죽은 이의 품속에서 나왔어. 그건 부인이 남편인 박사에게 남긴 유서였는데, 내용인즉슨 오랜 폐병으로 자신도 고통스럽고 주변에도 폐를 끼치는 것을 더는 견딜 수 없어서 이렇게 자살을 결심한다는 거였어. 대충 이런 내용이었지.
정말 흔해 빠진 사건이야. 만약 여기에 한 명의 명탐정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었을 테고, 박사 부인의 염세 자살이니 뭐니 하며 사회면 구석에 작은 기사 하나 남기는 것에 불과했을 거야. 하지만 그 명탐정 덕분에 우리도 아주 기막힌 이야깃거리가 하나 생겼단 말씀이지.

​그건 구로다 세이타로라는, 신문에서도 대단히 찬양하던 형사 순사인데, 이 사람이 아주 기특한 위인이라 평소 탐정 소설 쯤은 한두 권 읽고 있었던 모양이야. 뭐, 비전문가인 내 생각일 뿐이지만 말이야. 그 사내가 번역판 탐정 소설에나 나올 법하게 개처럼 네발로 기어 다니며 그 주변 땅바닥의 냄새를 맡듯 샅샅이 뒤지고 다녔거든. 그러고는 박사 저택 안으로 들어가서 주인이나 하인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거나, 각 방의 구석구석을 하나도 빠짐없이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등, 아무튼 최신 탐정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그 형사가 상관 앞에 나가서 하는 말이, 『이건, 좀 더 조사해 봐야겠습니다』 하는 거였어. 그러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고, 우선 시신 해부부터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지. 대학 병원에서 아무개 박사의 집도 아래 해부를 해보니, 구로다 명탐정의 추리가 빗나가지 않았다는 게 증명된 거야. 열차에 치이기 전에 이미 어떤 독약을 마신 듯한 흔적이 나온 거지. 즉, 누군가가 부인을 독살해 놓고 그 시신을 철도 선로까지 옮겨서 자살로 위장한, 사실은 끔찍한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는 얘기가 되는 거야. 그 당시 신문은 『범인은 누구인가』 같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우리 호기심을 한껏 부추겼지. 그래서 담당 검사가 구로다 형사를 불러 증거 조사 단계에 들어간 거야.

​자, 형사가 거드름을 피우며 내놓은 증거물이라는 것은, 첫째로 단화 한 켤레, 둘째로 석고로 뜬 발자국 모형, 셋째로 구겨진 휴지 조각 몇 장. 꽤 로맨틱하지 않나? 이 세 가지 증거품을 내밀며 이 사내가 주장하기를, 박사 부인은 자살한 게 아니라 살해당했다는 거야. 그리고 그 살인자는 놀랍게도 남편인 도미다 박사 본인이라는 거지. 어때, 제법 흥미진진하지?"
​이야기를 하던 청년은 약간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안주머니에서 은빛 담배 케이스를 꺼내 아주 능숙하게 옥스퍼드 담배 한 개비를 집어 들고는 찰칵 소리가 나게 뚜껑을 닫았다.

"그래." 듣고 있던 청년, 즉 마쓰무라가 이야기꾼을 위해 성냥불을 그어 주며 말했다. "거기까지는 나도 대충 알고 있어. 하지만 그 구로다라는 사내가 어떤 방법으로 살인자를 찾아냈는지, 그게 들어볼 만한 대목이겠지."
"아주 훌륭한 탐정 소설이지. 그래서 구로다 씨가 설명하기를, 타살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된 건 시신의 상처 부위 출혈이 의외로 적다며 경찰의가 갸우뚱했던 아주 사소한 점 때문이었다는 거야. 지난 19XX년 O월 O일 OO 마을 노모 살인 사건에도 그런 전례가 있다더군. 의심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의심하고, 그 의심 하나하나를 가능한 한 면밀히 탐색하라는 게 탐정술의 모토라던데, 이 형사도 그 요령을 제대로 터득하고 있었던지 하나의 가설을 세워 본 거야. 누군지 모를 남자나 여자가 이 부인에게 독약을 먹였다, 그리고 부인의 시신을 선로까지 가져와서 기차 바퀴가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뭉개 주기를 기다렸다, 라고 가정한다면 선로 근처에 시신 운반으로 인해 남겨진 어떤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추정한 거지.

그런데 형사에게 어찌나 행운이었는지, 사고 전날 밤까지 비가 계속 내린 덕분에 땅바닥에 여러 가지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어. 그것도 전날 한밤중쯤 비가 그친 후부터 사건이 발생한 오전 4시 몇 분 사이에 그 근처를 지나간 발자국만이 아주 안성맞춤으로 남아있었다는 얘기야. 그래서 형사는 아까 말한 개 흉내를 내기 시작한 거지. 자, 여기에 잠시 현장 약도를 그려 볼게."
소다(이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청년의 이름이다)는 이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소형 수첩을 꺼내 연필로 대강의 도면을 그렸다.
​"철도 선로는 땅보다 약간 높게 솟아 있고, 그 양쪽 경사면에는 잔디가 쫙 깔려 있어. 선로와 도미다 박사 저택 뒷문 사이에는 꽤 넓은, 그래, 테니스 코트 하나 정도 들어갈 만한 공터, 풀 하나 없는 잔자갈이 섞인 공터가 있지. 발자국이 찍혀 있던 건 그쪽이고, 선로의 반대쪽, 즉 박사 저택과는 반대편은 온통 논바닥에 저 멀리 어떤 공장의 굴뚝이 보이는 변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야. 동서로 뻗은 OO 마을의 서쪽 끝이 박사 저택 등 몇 채의 문화주택식 집들로 끝나니까, 박사 저택 라인에는 선로와 거의 평행하게 쭉 민가가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돼.

자, 네발로 기어 다닌 구로다 형사가 이 박사 저택과 선로 사이의 공터에서 무엇을 냄새 맡아 찾아냈냐 하면, 거기에는 열 개가 넘는 발자국이 뒤섞여 있었는데 그게 역사(轢死) 지점으로 집중되어 있는 형태라 언뜻 봐서는 뭐가 뭔지 몰랐을 게 틀림없어. 하지만 이걸 일일이 분류해서 조사해 낸 결과, 짚신(지카타비) 자국이 몇 종류, 나막신(게타) 자국이 몇 종류, 구두 자국이 몇 종류 하는 식으로 대충 알아낸 거지. 그래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머릿수와 발자국의 수를 비교해 보니, 딱 하나 발자국 쪽이 남는다는 걸 알게 됐어. 즉, 소속 불명의 발자국이 하나 발견된 거야. 게다가 그게 구두 자국이었지. 그 이른 아침에 구두를 신고 있는 사람은 일단 경찰 관계자들 외에는 없을 텐데, 그 사람들 중에는 아직 한 명도 돌아간 사람이 없었으니 조금 이상한 노릇이지. 더 자세히 조사해 보니, 그 의문의 구두 자국이 놀랍게도 박사 저택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걸 알아냈어."
"엄청나게 자세히도 아네." 듣고 있던 청년, 즉 마쓰무라가 이렇게 끼어들었다.

​"아니, 이 부분은 황색 신문(흥미 위주의 신문)에 신세를 진 바가 커. 거긴 이런 사건이 터지면 흥미 위주로 길게 보도하니까, 때론 도움이 되거든. 그래서 이번에는 박사 저택과 역사 지점 사이를 왕복한 발자국을 조사해 보니 네 종류가 있었어. 첫째는 방금 말한 소속 불명의 구두 자국, 둘째는 현장에 와 있는 박사의 짚신 자국, 셋째와 넷째는 박사 하인들의 발자국. 이것뿐이고, 정작 죽은 부인이 선로까지 걸어온 흔적이라는 게 보이지 않았어. 아마 그건 작은 버선발이나 맨발 자국이어야 할 텐데, 그게 어디에도 없었던 거야. 그렇다면 죽은 사람이 남자의 구두를 신고 선로까지 왔는가.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 이 구두 자국과 일치하는 자가 부인을 선로까지 안고 왔는가. 이 두 가지 중 하나지. 물론 전자는 말이 안 돼. 일단 후자의 추정이 확실하다고 봐도 무방한데, 그건 그 구두 자국에 묘한 특징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야. 그 구두 자국은 뒤꿈치 쪽이 땅에 아주 깊이 파고들어 있었거든. 어느 발자국을 보나 똑같은 특징이 있었지. 이건 무언가 무거운 것을 들고 걸었다는 증거야. 짐의 무게 때문에 뒤꿈치가 더 깊이 파고든 거지, 라고 형사가 판단했어. 이 점에 대해 구로다 씨는 황색 신문에서 한껏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는데, 그 사람 말이 이래. 『인간의 발자국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법이다. 이런 발자국은 절름발이고, 이런 발자국은 맹인이며, 이런 발자국은 임산부다』라며 대대적으로 발자국 탐정법을 설파하고 있어. 흥미가 생기면 어제 신문을 한 번 읽어 보게나.

​이야기가 길어지니 세세한 부분은 생략하기로 하고, 그 발자국을 통해 구로다 형사가 고심하여 탐정한 결과, 박사 저택 안방 마루 밑에서 문제의 구두 자국과 일치하는 단화 한 켤레를 발견해 냈어. 그게 불행히도 그 유명한 학자가 평소에 신던 것이라고 하인들의 증언으로 판명되었지. 그 외에도 세세한 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어. 하인들의 방과 박사 부부의 방이 꽤 떨어져 있다는 점이나, 그날 밤 하인들은(여자 두 명이었는데) 깊이 잠들어 있어서 아침 소동이 일어나서야 눈을 떴고 한밤중의 일은 전혀 몰랐다는 점, 그리고 당사자인 박사가 그날 밤 드물게 집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 게다가 구두 자국의 증거를 뒷받침하는 듯한 박사 가정의 사정이라는 게 있었지.
그 사정이라는 건, 도미다 박사가 자네도 알다시피 고(故) 도미다 노(老)박사의 사위라는 사실이야. 즉, 부인은 집안의 재산을 물려받은 응석받이 외동딸인데다 고질적인 폐결핵을 앓고 있었고, 외모도 그리 뛰어나지 못한 데다 극심한 히스테리까지 부렸다는 거지. 그로 인해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는 건 누구나 상상할 수 있지 않겠나. 실제로 박사는 몰래 첩의 집을 마련해 두고 기생 출신이라는 여자를 끔찍이 아끼고 있었지. 뭐, 난 이런 사실이 박사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깎아내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말이야. 아무튼, 히스테리라는 놈은 웬만한 남편을 미치게 만들어버리는 법이지. 박사의 경우도 이런 불편한 관계가 쌓이고 쌓여서 그 참사를 불러일으켰을 거다, 라는 추론은 꽤 논리정연하잖아.

​그런데 여기에 하나 남겨진 난제가 있어. 바로 처음에 말했던, 죽은 사람 품속에서 나왔다는 유서야. 이리저리 조사해 본 결과, 그건 틀림없이 박사 부인의 필적이라고 판명되었는데, 어떻게 부인이 마음에 없는 유서 같은 걸 쓸 수 있었을까? 그게 구로다 형사에게는 하나의 난관이었지. 형사 본인도 이 부분에서 꽤나 애를 먹었다고 털어놨지만 말이야. 아무튼 온갖 고생 끝에 발견해 낸 것이 바로 구겨진 몇 장의 휴지 조각이었어. 이게 뭐냐 하면 글씨 연습을 한 종이였는데, 박사가 부인의 필적을 어떤 이면지 같은 데다가 연습한 거였지. 그중 한 장은 부인이 여행 중인 박사에게 보낸 편지였고, 이걸 본보기 삼아 범인이 자기 아내의 필체를 연습했다는 뜻이야. 꽤 치밀하게 꾸민 거지. 그걸 형사가 박사의 서재 휴지통에서 발견했다는 거야.

​그래서 결론은 이렇게 돼. 눈엣가시이자 연애의 방해물이며 감당하기 힘든 광기를 가진 부인을 없애 버리자. 그것도 박사인 자신의 명예에 조금도 흠집이 나지 않는 방법으로 실행하자고 깊이 마음먹은 박사는, 약이라 속여 어떤 독약을 부인에게 먹인 뒤,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어깨에 둘러메고 문제의 단화를 꿰신고 뒷문을 나서서 마침 가까이 있는 철도 선로까지 옮겼어. 그리고 희생자의 품속에 미리 준비해 둔 그럴듯한 유서를 넣어 두었지. 이윽고 역사 사건이 발견되자 대담한 죄인은 몹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현장으로 달려왔다. 대충 이런 사연이야.
왜 박사가 부인과 이혼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고 이런 위험한 길을 택했는가 하는 점은 아마 신문 기자 자신의 생각인 듯싶은데, 어떤 신문에 이렇게 설명되어 있더군. 첫째는 고(故) 노박사에 대한 의리상 세상의 비난이 두려웠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 잔혹한 짓을 감행한 박사에게는 어쩌면 이쪽이 주된 이유였을지도 모르지만, 박사 부인에게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꽤 쏠쏠한 재산이 있었다는 것. 이 두 가지를 들고 있어.
​그리하여 박사는 연행되고, 구로다 세이타로 씨의 명예는 치솟았으며, 신문 기자들에게는 뜻밖의 수확이 되었고, 학계에는 일대 불상사가 되어 자네 말대로 세상은 지금 이 소문으로 들끓고 있는 형국이지. 꽤 드라마틱한 사건임에는 틀림없으니까 말이야."


 

[오디오북으로 직접 감상해 보세요]


​소다는 이렇게 이야기를 끝맺고는, 앞에 놓인 유리잔을 단숨에 비웠다.
"현장을 직접 목격해서 흥미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참 자세히도 알아봤군. 그나저나 그 구로다라는 형사는 경찰관치고는 머리가 아주 비상한 사내네."
"뭐, 일종의 소설가라 할 수 있지."
"어, 그래 맞아. 아주 훌륭한 소설가야. 오히려 소설 이상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창작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하지만 내 생각에 그는 소설가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보네."
한 손을 조끼 주머니에 넣고 무언가 더듬으면서 소다가 비꼬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
마쓰무라는 담배 연기 속에서 눈을 끔벅이며 반문했다.
"구로다 씨는 소설가일지는 몰라도 탐정은 아니라는 얘기지."
"어째서?"

마쓰무라는 깜짝 놀란 듯했다. 무언가 엄청난,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을 기대하는 듯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았다. 소다는 조끼 주머니에서 작은 종잇조각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리고,
"이게 뭔지 아나?" 하고 말했다.
"그게 어쨌다는 건가. PL 상회의 영수증이잖아." 마쓰무라는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래. 3등 급행열차의 대여 베개 대금 40전짜리 영수증이야. 이건 내가 역사 사건 현장에서 우연히 주운 거지만, 난 이걸로 박사의 무죄를 주장하려는 거네."
"바보 같은 소리 마, 농담이겠지."
마쓰무라는 아주 부정하는 것도 아닌, 반신반의하는 투로 말했다.
​"애초에 증거 따위에 얽매일 것 없이 박사는 무죄여야만 해. 도미다 박사 같은 대학자를 고작 히스테리 여자 하나의 목숨 때문에 이 세계――그래, 박사는 세계적인 인물이야. 전 세계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사람이라고.――이 세계에서 매장해 버리다니, 대체 어느 멍청이가 그런 짓을 생각한단 말인가. 마쓰무라 군, 실은 내가 오늘 1시 반 기차로 박사의 빈집을 방문할 작정이라네. 가서 집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 물어볼 게 있거든."
이렇게 말하며 손목시계를 힐끗 쳐다본 소다는 냅킨을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마 박사는 스스로 변명하실 테지. 박사에게 동정하는 법률가들도 박사를 위해 변호할 거고. 하지만 내가 여기 쥐고 있는 이 증거물은 다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아. 이유를 말해 달라고? 조금만 기다려 주게. 좀 더 알아보지 않으면 완벽하지 않으니까. 내 추리에는 아직 약간의 빈틈이 있거든. 그걸 채우기 위해 잠깐 실례하고 다녀오겠네. 웨이터, 자동차 좀 불러 주게. 그럼,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하지."



​하 (下)

​그다음 날, OO시에서 발행 부수가 가장 많다고 알려진 OO 신문 석간에, 아래와 같이 5단에 걸친 장문의 투고가 실렸다. 제목은 "도미다 박사의 무죄를 증명함"이었고, 소다 고로라고 서명되어 있었다.
​저는 이 투고와 동일한 내용을 담은 서면을, 도미다 박사 심문을 담당하고 계신 예심 판사 OO 씨에게 이미 제출했습니다. 아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만, 만에 하나라도 그분의 오해나 기타 다른 이유로 인해 일개 서생에 불과한 저의 이 진술이 어둠 속에 묻혀버릴 경우를 염려하여, 또한 유력한 담당 형사에 의해 증명된 사실을 뒤집는 저의 진술이 가령 채택된다 하더라도 사후에 제가 존경하는 도미다 박사님의 억울한 누명이 세상에 널리 알려질 만큼 명확하게 당국의 손으로 발표될 수 있을지를 염려하여, 여기에 여론을 환기할 목적으로 이 글을 싣는 바입니다.

​저는 박사님에 대해 어떠한 개인적인 은원도 없으며, 그저 그분의 저서를 통해 그 두뇌를 존경하는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눈뜨고 코 베이듯 잘못된 추리에 의해 죄를 뒤집어쓸 위기에 처한 우리 학계의 거장을 구원할 자는, 우연히도 그 현장에 있었고 조그만 증거물을 손에 넣게 된 저밖에 없다고 믿기에, 당연한 의무로서 이런 행동을 취하게 된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자, 어떤 이유로 저는 박사의 무죄를 믿는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사법 당국이 형사 구로다 세이타로 씨의 조사를 통해 추정한 박사의 범죄라는 것이 너무나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어설픈 연극 같은 냄새가 짙게 풍긴다는 것입니다. 티끌만 한 미세함조차 놓치지 않는 그 투철하고 비할 데 없는 대학자의 두뇌와 이번 소위 범죄 사실이라는 것을 비교해 볼 때, 우리들은 어떤 느낌을 받게 됩니까? 그 사고방식의 엄청난 괴리에 오히려 쓴웃음을 금할 수 없지 않습니까?

경찰 당국은 박사님의 두뇌가 어설픈 구두 자국을 남기고, 가짜 필체 연습지를 남기고, 독약이 든 컵조차 남겨서 구로다 아무개 씨가 이름을 날리게 해 줄 정도로 노망이 났다고 말하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면, 그 박식한 용의자가 독약이 시신에 흔적을 남기리라는 것조차 미리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겁니까? 저는 어떠한 증거를 제출할 필요조차 없이, 박사님은 당연히 무죄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단순한 추측만으로 이 진술을 결심할 만큼 무모한 자는 아닙니다.

​형사 구로다 세이타로 씨는 지금 혁혁한 무공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세간 사람들은 그분을 일본이 낳은 셜록 홈즈라고까지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 의기양양한 절정에 있는 분을 여기서 나락의 밑바닥까지 떨어뜨리는 것은, 저로서도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실제로 저는 구로다 씨가 우리나라 경찰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수완가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번의 실패는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가 너무 좋았던 탓에 생긴 화근입니다. 그분의 추리법에는 오류가 없었습니다. 단지 그 재료가 되는 관찰에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즉, 치밀하고 주도면밀한 점에서 저라는 일개 서생보다 뒤떨어졌다는 것을 그분을 위해 깊이 애석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제가 제공하고자 하는 증거물이란 다음의 두 가지, 지극히 하찮은 물건들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습득한 한 장의 PL 상회 영수증(3등 급행열차에 비치된 대여 베개 대금 영수증)
​증거품으로 당국에 보관되어 있는 박사님의 단화 끈.
​단지 이것뿐입니다. 독자 여러분에게는 이것이 너무나 가치 없게 보일까 염려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방면의 전문가들은 머리카락 한 올조차 중대한 범죄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우연한 발견에서 출발했습니다. 사건 당일 현장에 있던 저는 검시관들의 활동을 지켜보던 중, 마침 제가 깔고 앉아 있던 돌멩이 하나 밑에서 하얀 종잇조각의 끝자락이 살짝 삐져나와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만약 그 종잇조각에 찍힌 날짜 도장을 보지 못했다면 아무런 의심도 생기지 않았겠지만, 박사님을 위해서는 다행스럽게도 그 날짜 도장이 제 눈에 어떤 계시처럼 아로새겨졌습니다. 19XX년 10월 9일, 즉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전날의 날짜가 말입니다.
저는 20킬로그램은 족히 넘을 법한 그 돌멩이를 치우고, 비 때문에 찢어질 듯한 종잇조각을 주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PL 상회의 영수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호기심을 자극한 것입니다.
​자, 구로다 씨가 현장에서 간과한 점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우연히 저에게 주어진 PL 상회의 영수증이므로 이것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두 가지 점에 있어서 허술함이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영수증이라 하더라도 만약 구로다 씨가 대단히 치밀한 주의력을 갖고 있었다면 저처럼 우연이 아니라 능히 발견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영수증을 누르고 있던 돌이라는 것이 박사 저택 뒤에 반쯤 완성된 하수구 옆에 잔뜩 굴러다니는 돌멩이 중 하나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데, 유독 그 돌멩이 단 하나만 멀리 떨어진 선로 쪽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은 구로다 씨 이상의 주의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무언가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져 주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는 당시 그 영수증을 현장에 있던 경찰관 한 사람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제 호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방해되니 비켜 있으라고 호통치던 그 사람을, 저는 지금도 현장에 있던 수많은 경찰들 사이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점은, 소위 범인의 발자국이라는 것이 박사 저택 뒷문에서 출발하여 선로까지는 와 있었지만 다시 선로에서 박사 저택으로 돌아간 흔적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을 구로다 씨는 어떻게 해석하셨는지는――이 중대한 사실에 대해 생각 없는 신문 기자는 아무런 보도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저는 알 수 없으나, 아마 범인이 희생자의 몸을 선로에 내려놓은 뒤 어떤 사정으로 선로를 따라 길을 돌아 저택으로 돌아갔다고 판단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조금만 우회하면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박사 저택까지 돌아갈 수 있는 장소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발자국과 일치하는 단화 자체가 박사 저택 안에서 발견된 사실을 통해, 설령 돌아간 발자국은 없을지언정 돌아갔다는 증거는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일견 그럴듯한 생각입니다만, 거기에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점이 있지 않습니까?

​세 번째 점은 대개 사람들의 주의에서 벗어나기 쉬운, 실제로 그것을 목격한 사람조차 전혀 신경 쓰지 않을 만한 종류의 것입니다. 바로 개 한 마리의 발자국이 그 주변 일대에, 특히 소위 범인의 발자국과 나란히 찍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왜 이것을 주의 깊게 보았느냐 하면, 사람이 열차에 치여 죽은 마당에 그 근처에 있던 개가, 더구나 발자국이 박사 저택 뒷문으로 사라진 것을 감안하면 필시 죽은 사람의 애견일 그 개가 이 소란스러운 현장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상으로 저는 소위 저의 증거라는 것들을 남김없이 열거했습니다. 예리한 독자라면 제가 앞으로 서술하고자 하는 바를 대략 짐작하셨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사족일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저는 결론까지 진술해야만 합니다.
​그날 귀가했을 때만 해도 저는 아직 아무런 의견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점에 대해서도 각별히 깊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독자의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일부러 명확하게 서술했을 뿐이지, 제가 당일 그 자리에서 이 모든 것을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튿날, 또 그다음 날 매일 아침 신문을 통해 제가 존경하는 박사님이 용의자로 연행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구로다 형사의 소위 탐정 무용담이라는 것을 읽게 되면서, 저는 이 진술 서두에 말씀드린 것과 같은 상식적인 판단에서 구로다 씨의 탐정에 어딘가 잘못된 점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당일 목격한 여러 가지 점을 종합해 보고, 그래도 남는 의문점에 대해서는 오늘 박사님 댁을 방문하여 집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캐물어본 결과, 마침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래에 순서를 따라 저의 추리의 궤적을 적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출발점은 PL 상회의 영수증입니다. 사건 전날, 아마도 전날 밤 깊은 시각에 급행열차 창밖으로 버려졌을 이 영수증이 왜 20킬로그램이나 되는 무거운 돌멩이 밑에 깔려 있었을까? 이것이 첫 번째 착안점이었습니다. 이것은 전날 밤 PL 상회의 영수증을 떨어뜨리고 간 열차가 통과한 후, 누군가가 그 돌멩이를 그곳으로 가져왔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차 선로에서, 혹은 돌을 싣고 통과하던 무개 화차 위에서 굴러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은 그 위치를 보면 명백합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서 이 돌을 가져왔을까요? 꽤 무거운 것이니 먼 곳일 리는 없습니다.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곳은, 박사 저택 뒤편에 하수구를 쌓기 위해 놓아둔 수많은 돌멩이 중 하나라는 것인데, 쐐기 모양으로 깎인 그 생김새만 보아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즉, 전날 늦은 밤부터 그날 아침 역사가 발견될 때까지의 시간 사이에 박사 저택에서 역사가 발생한 장소까지 그 돌을 운반한 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 발자국이 남아있어야 합니다. 전날 밤에는 비도 가늘어졌고 자정 무렵에는 그쳤으므로 발자국이 씻겨나갔을 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발자국이라는 것은, 현명하신 구로다 씨가 조사하신 대로 그날 아침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발자국 외에는 '범인의 발자국' 단 하나뿐입니다. 여기서, 돌을 운반한 자는 바로 그 '범인' 본인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기묘한 결론에 도달한 저는, 어떻게 '범인'이 돌을 운반하는 일에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고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주 교묘한 트릭이 농간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아연실색하고 말았습니다.
​사람을 안고 걸어간 발자국과 돌을 안고 걸어간 발자국, 그것은 숙련된 탐정의 눈을 속이기에 충분할 만큼 서로 비슷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저는 이 놀라운 트릭을 눈치챈 것입니다. 즉 박사에게 살인 혐의를 씌우기를 바라는 누군가가, 박사의 구두를 신고 부인의 몸 대신 돌멩이를 안고 선로까지 발자국을 냈다고 밖에는 달리 해석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끔찍한 트릭의 제작자가 그 발자국을 남겼다고 한다면, 열차에 치여 죽은 당사자, 즉 박사 부인은 어떻게 선로까지 갔을까요? 그 발자국이 하나 모자라게 됩니다.

이상의 추리가 낳은 당연하고도 유일한 귀결로서, 저는 유감스럽게도 박사 부인 그 자신이 남편을 저주하는 끔찍한 악마였음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전율할 만한 범죄의 천재. 저는 질투에 미쳐버린, 게다가 폐결핵이라는――그것은 오히려 환자의 두뇌를 병적일 정도로 명석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불치병에 걸린 한 어두운 여인을 상상했습니다. 모든 것이 암흑입니다. 모든 것이 음습합니다. 그 암흑과 음습함 속에서 눈만 섬뜩하게 빛나는 창백한 여인의 환상, 수십 일 수백 일 동안의 환상, 그 환상의 실현을 생각하며 저는 나도 모르게 오싹함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차치하고 다음으로 두 번째 의문점입니다. 발자국이 박사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은 어찌 된 것일까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열차에 치인 당사자가 신고 간 구두 자국이니 돌아가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게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와 같은 범죄적 천재성을 지닌 박사 부인이 왜 선로에서 박사 저택까지 발자국을 되돌려 놓는 것을 잊어버렸을까요? 그리고 만약 PL 상회의 영수증이 우연히도 열차 창밖으로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유일한 단서가 되었을 법한 어설픈 흔적을 어찌하여 남겼을까요?

​이 의문에 대해 해결의 열쇠를 던져 준 것은, 세 번째 의문점으로 제기했던 개의 발자국이었습니다. 저는 그 개의 발자국과 박사 부인의 이 유일한 실수를 결부시켜 보고는 미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부인은 박사의 구두를 신은 채 선로까지 왕복할 예정이었을 게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른 발자국이 찍히지 않을 만한 길을 골라 선로로 향할 작정이었겠지요.
하지만 우습게도 여기서 뜻밖의 방해꾼이 나타났습니다. 부인의 애견인 존이――이 '존'이라는 이름은 제가 오늘 그 집의 하인 아무개 씨로부터 알아낸 것입니다――부인의 기이한 행동을 눈치 빠르게 발견하고는 옆으로 다가와 맹렬하게 짖어댄 것입니다. 부인은 개의 짖는 소리에 식구들이 잠에서 깨어 자신을 발견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우물쭈물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죠. 설령 식구들이 깨지 않더라도 존의 짖는 소리에 동네 개들이 몰려오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그래서 부인은 이 난관을 역이용하여 존을 쫓아버리는 동시에 자신의 계획마저 수행할 수 있는 기발한 방법을 그 짧은 순간에 생각해 낸 것입니다.

​제가 오늘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존이라는 개는 평소에 가벼운 물건을 물고 심부름을 하도록 훈련받아 왔습니다. 주로 주인을 따라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저택으로 무언가를 가져다 놓는 식의 일에 익숙해져 있었죠. 그리고 그럴 경우 존은 가져온 물건을 반드시 안방에 놓아두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박사 저택을 방문하여 알아낸 또 다른 사실은, 뒷문에서 안방 퇇마루로 가기 위해서는 안뜰을 둘러싸고 있는 판자울타리의 쪽문을 통과하는 것 외에는 통로가 없었으며, 그 쪽문은 양실의 문 등에 있는 스프링 장치처럼 안쪽으로만 열리도록 만들어져 있었다는 점입니다.

​박사 부인은 이 두 가지 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입니다. 개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경우에 그저 말로 쫓아버리려 해서는 물러가지 않지만, 무언가 심부름을 시키면――예를 들어 나뭇가지를 멀리 던지고 주워 오게 하는 것 같은――반드시 그것을 따른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동물 심리를 이용하여 부인은 구두를 존에게 내주어 그 자리를 떠나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두가 적어도 안방 퇇마루 근처에 놓여 있을 것과――당시에는 덧문이 닫혀 있었을 테니 존도 평소 습관대로 하지는 못했을 겁니다――안쪽에서는 밀어도 열리지 않는 쪽문에 가로막혀 다시는 개가 그곳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상은 구두 자국이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과, 개의 발자국 등 기타 정황들, 그리고 박사 부인의 범죄적 천재성을 서로 결부시켜 제가 상상력을 발휘해 본 것에 불과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너무 억측이 아니냐는 비난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염려합니다. 오히려 발자국이 돌아가지 않은 것은 실제로 부인의 실수였고, 개의 발자국은 처음부터 부인이 구두 처리를 위해 계획한 바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이 정답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어느 쪽이든 제가 주장하고자 하는 '부인의 범죄'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자, 여기에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것은 개 한 마리가 한 켤레, 즉 두 짝의 구두를 어떻게 한꺼번에 나를 수 있었느냐 하는 점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을 주는 것이 앞서 제시한 두 가지 증거물 중 아직 설명을 내리지 않은 "증거품으로 당국에 보관되어 있는 박사님의 구두 끈"입니다. 저는 같은 하인 아무개 씨의 기억을 통해, 그 구두가 압수되었을 당시 극장 신발장 관리인이 하는 것처럼 구두와 구두가 구두 끈으로 서로 묶여 있었다는 사실을 무척 고심하여 알아냈습니다. 형사 구로다 씨는 과연 이 점에 주의를 기울이셨을까요? 목적물을 발견한 기쁨에 들떠 어쩌면 간과하신 것은 아닐까요? 설령 간과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범인이 어떤 이유로 이 끈을 묶어서 퇇마루 밑에 숨겨두었다고 추측하는 선에서 안심해 버린 것은 아닐까요? 그렇지 않았다면 구로다 씨의 그 결론은 나오지 않았을 터입니다.

​이리하여 무서운 저주의 여인은 준비해 둔 독약을 마시고 선로에 누워, 명예의 절정에서 배척의 골짜기 밑바닥으로 내몰려 감옥 속에서 신음하게 될 남편의 환영을 향해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급행열차의 바퀴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약을 담았던 용기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독자가 그 선로 근처를 꼼꼼하게 뒤져본다면, 십중팔구 논의 진흙탕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부인의 품속에서 발견되었다는 유서에 관해서는 아직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만, 이 또한 구두 자국 등과 마찬가지로 두말할 나위 없이 부인이 만들어 둔 거짓 증거입니다. 제가 직접 그 유서를 본 것은 아니니 단순한 추측에 그치지만, 전문 필적 감정가에게 연구를 의뢰한다면 반드시 부인이 자기 자신의 필체 버릇을 흉내 낸 것이며, 거기 쓰인 문구는 실로 정직한 본심이었음이 판명될 것입니다. 그 외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일일이 반증을 들거나 설명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겠습니다. 그것은 이상의 진술을 통해 독자 여러분 스스로가 자연스레 깨닫게 되실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부인이 자살한 이유입니다만, 그것은 독자 여러분도 상상하시는 바와 같이 지극히 간단합니다. 제가 박사님의 하인 아무개 씨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그 유서에도 적혀 있듯 부인은 실제로 심각한 폐병 환자였습니다. 이 사실이 부인의 자살 원인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닐까요? 즉, 부인은 욕심 많게도 한 번의 죽음으로 염세적 자살과 연적(사랑)에 대한 복수라는 이중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것으로 저의 진술을 마칩니다. 이제는 오로지 예심 판사 OO 씨가 하루빨리 저를 소환해 주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전날과 같은 레스토랑의 같은 테이블에 소다와 마쓰무라가 마주 앉아 있었다.
"하루아침에 인기스타가 되었구먼."
마쓰무라가 친구를 찬양하듯 말했다.
"그저 학계에 조금이나마 공헌할 수 있었던 것을 기뻐할 따름이야. 만약 장래에 도미다 박사님이 세계 학계를 놀라게 할 만한 저술을 발표하실 경우 말이야, 내가 그 서명란에 '소다 고로 공저'라는 금박 글씨를 덧붙여 달라고 박사님께 요구해도 무방하지 않겠나."
이렇게 말하며 소다는 덥석덥석 길러둔 긴 머리카락 속으로 마치 빗질이라도 하듯 손가락을 쫙 펴서 밀어 넣었다.
"그건 그렇고, 자네가 이렇게나 뛰어난 탐정일 줄은 정말 몰랐어."
"그 탐정이라는 말은 '공상가'로 정정해 주게. 사실 내 공상이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나도 모르거든. 이를테면 만약 그 용의자가 내가 숭배하는 대학자가 아니었다고 친다면, 도미다 박사 본인이 부인을 살해한 범인이라는 결론조차도 내 나름대로 공상해 냈을지 모를 일이지. 그랬다면 내 스스로가 가장 유력한 증거로 제시했던 것들을 모조리 부정해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이보게, 알겠나? 내가 그럴싸하게 늘어놓은 증거라는 것들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전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다른 경우마저 얼마든지 상상해 볼 수 있는 애매모호한 것들뿐이라네. 단 하나 확실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 PL 상회의 영수증뿐인데, 그것마저도 말이야, 이를테면 문제의 돌멩이 밑에서 주운 것이 아니라 그 돌멩이 옆에서 주웠다고 한다면 어쩔 텐가?"
​소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씩 웃었다.(끝)





"더 많은 명작 오디오북(1000편)을 생생한 목소리로 듣고 싶으시다면, 유튜브 '원아나의 책 읽는 TV'를 방문해 주세요!"


본 포스팅의 번역 및 각색 원고는 '원아나의 책 읽는 TV'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무단 도용 및 상업적 배포를 금하며, 인용 시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에도가와란포 #한장의기차표 #일본미스터리 #추리소설추천 #오디오북 #원아나의책읽는TV #소설텍스트공개 #소설전문읽기 #소설원고확인 #세계문학선집 #무료소설 #명작감상 #반전소설 #책읽어주는아나운서 #베스트셀러추리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