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아나의 한마디☆
전해지지 못한 진심은 때로 가장 잔혹한 암호가 되어 돌아옵니다. 고요한 서재를 채우는 일기장 속 서늘한 고백, 그 마지막 한 문장이 선사하는 충격적인 여운을 아나운서의 정제된 목소리로 함께 마주해 보십시오.소설 원고 전문(全文)
일기장
에도가와 란포
마침 동생이 죽은 지 이레째 되는(초칠일) 밤의 일이었습니다. 나는 죽은 동생의 서재에 들어가, 그가 남긴 글 같은 것을 꺼내보며 홀로 상념에 잠겨 있었습니다.
아직 밤이 그리 깊지도 않았는데, 온 집안은 눈물에 젖어 쥐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왠지 신파극 같기는 하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물건 파는 소리 등이 무척이나 구슬프게 울려 퍼졌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어릴 적의 차분하고 애틋한 기분이 들어 문득 그곳에 있던 동생의 일기장을 펼쳐 보았습니다.
이 일기장을 볼 때마다, 나는 아마도 사랑조차 모른 채 세상을 떠났을 스무 살 동생이 가엾게 느껴져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내성적이고 친구도 적었던 동생은 자연히 서재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얇은 펜으로 꼼꼼하게 적어 내려간 일기장만 보아도 그런 그의 성격을 충분히 엿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인생에 대한 의구심이라든가 신앙에 관한 번민이라든가, 그의 나이대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이른바 청춘의 방황에 대해, 유치하긴 해도 무척이나 진지한 문장들이 쓰여 있었습니다.
나는 내 과거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한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그 페이지 곳곳에는, 쓰여 있는 문장 너머로 비둘기같이 겁 많아 보이는 동생의 눈동자가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3월 9일 자까지 읽어 내려갔을 때, 감회에 젖어 있던 내가 무심코 가벼운 탄성을 내뱉을 정도로 내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순결한 그 일기의 문장 속에 처음으로 불쑥, 화사한 여자의 이름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발신란'이라고 인쇄된 곳에 '기타가와 유키에(엽서)'라고 적힌 그 유키에 씨는, 나도 잘 아는 우리와 먼 친척뻘 되는 집안의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였습니다.
그렇다면 동생은 유키에 씨를 사랑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왠지 모를 옅은 전율을 느끼며 계속해서 그 뒷장을 넘겨보았습니다만, 내 잔뜩 부푼 기대와는 달리 일기 본문에는 유키에 씨가 전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다음 날 수신란에 '기타가와 유키에(엽서)'라고 적힌 것을 시작으로, 며칠 간격을 두고 수신란과 발신란 양쪽에 유키에 씨의 이름이 적혀 있을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그것도 발신은 3월 9일부터 5월 21일까지, 수신 역시 비슷한 시기에 시작되어 5월 17일까지, 양쪽 모두 석 달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이어졌을 뿐입니다. 그 이후로는 동생의 병세가 악화되어 펜을 쥘 수조차 없게 된 10월 중순에 이르기까지, 그의 절필이라 부를 수 있는 마지막 페이지조차 유키에 씨의 이름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세어보니 동생 쪽에서는 8번, 유키에 씨 쪽에서는 10번 편지가 오갔을 뿐이며, 게다가 동생의 것에도 유키에 씨의 것에도 전부 '엽서'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남의 눈을 꺼릴 만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일기장 전체의 분위기로 미루어 보아, 실제로는 그 이상의 일이 있었는데도 그가 일부러 적지 않은 것이라고도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안심이랄지 실망이랄지 모를 묘한 기분으로 일기장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동생은 결국 사랑도 모른 채 죽었구나 싶어 쓸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윽고 문득 고개를 들어 책상을 바라본 나는 그곳에 동생이 생전에 아끼던 작은 문서 상자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살아생전 가장 소중한 물건들을 보관해 두었을, 돋을새김 무늬가 있는 고풍스러운 상자 안에는 어쩌면 나의 이 쓸쓸한 마음을 달래줄 무언가가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 그런 호기심에 나는 무심코 그 상자를 열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안에는 이 이야기와 관계없는 여러 서류 등이 들어 있었지만, 그 맨 밑바닥에서... 아아, 역시 그랬던가. 무척이나 소중한 듯 백지에 싸놓은 열한 장의 그림엽서가, 유키에 씨가 보낸 그림엽서가 나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낸 것이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소중하게 상자 밑바닥에 숨겨두듯 보관하겠습니까.
나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그 열한 장의 그림엽서를 차례차례 살펴보았습니다. 어떤 감동 때문에 엽서를 쥔 내 손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일까요. 그 엽서들에는 어느 문장에서도, 혹은 그 문장들의 행간에서조차 연애편지다운 느낌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동생은 그 겁 많은 성격 탓에 마음속을 털어놓을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그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온 아무 의미도 없는 이 몇 통의 그림엽서를 부적이나 되는 양 소중히 간직하며 가엾게도 그것으로나마 위안을 삼았던 것일까요. 그리고 결국 보답받지 못한 마음을 품은 채 이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일까요.
나는 유키에 씨가 보낸 그림엽서를 앞에 두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찌 된 영문일까요. 이윽고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동생의 일기에는 유키에 씨로부터 받은 편지가 10번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그건 아까 세어보아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여기에는 열한 통의 그림엽서가 있지 않습니까. 마지막 엽서는 5월 25일 자로 되어 있습니다. 분명 그날 일기에는 수신란에 유키에 씨의 이름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기장을 집어 들고 그 5월 25일 자를 펼쳐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나는 엄청난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확실히 그날의 수신란은 공백으로 남겨져 있었지만, 본문 속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편지에 대해 Y로부터 그림엽서 오다. 실망. 나는 너무 겁쟁이였다. 이제 와서는 돌이킬 수 없다. 아아."
Y라는 것은 유키에 씨의 이니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외에 같은 이니셜을 가진 지인은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 문구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일기에 따르면, 그는 유키에 씨에게 엽서만 보냈을 뿐입니다. 설마 엽서에 연애편지를 썼을 리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기에는 적혀 있지 않은 밀봉된 편지(그것이 이른바 '마지막 편지'일지도 모릅니다)를 보낸 적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에 대한 답장으로 이 무의미한 그림엽서가 돌아왔다는 말일까요? 과연, 그 이후로 그도 유키에 씨도 연락을 끊은 것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유키에 씨가 보낸 마지막 엽서의 내용은 가령 거절의 의미를 담은 것이라 하더라도 너무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이미 그 무렵 동생은 병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병문안하는 문구만이 아름다운 글씨체로 적혀 있을 뿐이니까요. 게다가 발신과 수신을 이렇게나 꼼꼼히 기록하던 동생이 8통의 엽서 외에 밀봉된 편지를 보냈다면 그것을 기록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그럼 이 '실망' 어쩌고 하는 문구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그런 식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앞뒤가 맞지 않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죽은 동생이 남기고 간 하나의 수수께끼로서 조용히 묻어두어야 할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슨 업보인지 나에게는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사실에 부딪히면 마치 탐정이 범죄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니듯 끝까지 그 진상을 밝혀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성질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경우에는 그 수수께끼가 당사자에 의해 영원히 풀릴 기회가 없다는 사정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의 진위가 내 자신의 신상에도 큰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타고난 탐정 벽이 더욱 강하게 나를 사로잡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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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 따윈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수수께끼를 푸는 데 열중했습니다. 일기도 반복해서 읽어보았습니다. 그 밖에 동생이 쓴 글 등도 남김없이 찾아내어 조사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연애의 기록 같은 것은 단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동생은 지독히 수줍음을 타는 데다 더할 나위 없이 조심스러운 성격이었으니, 아무리 찾아본들 그런 것이 남아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아무리 생각해도 풀릴 것 같지 않은 수수께끼를 푸는 데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긴 시간이었습니다.
이윽고, 갖가지 헛고생 끝에 문득 나는 동생이 엽서를 보낸 날짜에 의구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일기 기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순서입니다.
3월……9일, 12일, 15일, 22일,
4월……5일, 25일,
5월……15일, 21일,
이 날짜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심리에 반하는 것은 아닐까요. 비록 연애편지가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연락이 뒤로 갈수록 뜸해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것을 유키에 씨가 보낸 엽서의 날짜와 대조해 보면 그 이상한 점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3월……10일, 13일, 17일, 23일,
4월……6일, 14일, 18일, 26일,
5월……3일, 17일, 25일,
이것을 보면 유키에 씨는 동생의 엽서에 대해 (그것들은 모두 아무 의미 없는 내용이었지만) 각각 답장을 보낸 것 외에도 4월 14일, 18일, 5월 3일, 적어도 이 3번만큼은 그녀 쪽에서 적극적으로 편지를 보냈는데, 만약 동생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면 왜 이 세 번의 편지에 대해 답장하는 것을 게을리했을까요. 그것은 그 일기장의 문구와 함께 생각해보면 너무 부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일기에 따르면 당시 동생은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펜조차 쥘 수 없을 정도로 아팠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유키에 씨의 무의미한 문장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빈번한 연락은 상대가 젊은 남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상하게 생각하려면 생각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양쪽 모두 짠 것처럼 5월 25일 이후로는 딱 끊어지듯 연락을 하지 않게 된 것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동생이 엽서를 보낸 날짜를 보니, 거기에 무언가 의미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혹시 그는 암호로 된 연애편지를 쓴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이 엽서의 날짜가 그 암호문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비밀을 좋아하는 동생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날짜의 숫자가 '가나다'나 '알파벳(ABC)' 등 어떤 문자의 순서를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일일이 시험해 보았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암호 해독에 약간의 경험이 있었거든요.
그러자, 어찌 된 일일까요! 3월 9일은 알파벳의 아홉 번째인 I, 마찬가지로 12일은 열두 번째인 L, 그런 식으로 대입해 나가니 이 여덟 개의 날짜는 놀랍게도 'I LOVE YOU'라고 풀 수 있지 않습니까. 아아, 이 얼마나 아이 같으면서도 세상에서 제일 끈기 있는 연애편지란 말입니까. 그는 이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단 한마디를 전하기 위해 꼬박 석 달이라는 세월을 들인 것입니다. 정말이지 거짓말 같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동생의 특이한 성벽을 잘 알고 있던 나에게는 이것이 우연의 일치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추측하면 모든 것이 명백해집니다. '실망'이라는 의미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마지막 U자에 해당하는 엽서를 보낸 것에 대해 유키에 씨는 변함없이 무의미한 그림엽서로 답한 것입니다. 게다가 그때는 마침 동생이 의사로부터 그 끔찍한 병을 선고받은 무렵이었습니다. 가엾은 그는 이 이중의 타격에 더 이상 연애편지를 쓸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이겠죠. 그리고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당사자인 연인에게 털어놓기는 했지만 그 뜻이 통하지 않아 생긴 애달픈 마음을 안고 죽어간 것입니다.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어두운 기분에 휩싸여, 가만히 그곳에 앉은 채 일어설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유키에 씨가 보낸 그림엽서를, 동생이 상자 밑바닥 깊숙이 간직하고 있던 그 그림엽서들을 아무 이유 없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오, 이 얼마나 뜻밖의 사실입니까! 쓸데없는 호기심이여, 저주받을진저. 차라리 모든 것을 모른 채 지내는 편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유키에 씨가 보낸 그림엽서 앞면에는 예쁜 글씨로 동생의 이름이 적힌 옆에,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우표가 비스듬하게 붙어 있지 않습니까. 일부러 그러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정도로 아주 반듯하게, 비스듬히 붙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결코 우연한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아주 예전, 아마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문예 잡지에 우표 붙이는 방법에 따라 비밀 통신을 하는 방법이 적혀 있던 것을, 그때부터 이미 호기심 많은 소년이었는지라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랑을 표현하려면 우표를 비스듬히 붙이면 된다는 대목은 사실 한 번 응용해 본 적도 있을 정도라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이 방법은 당시 젊은 남녀들의 인기를 끌어 꽤나 유행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옛날 유행을 요즘 젊은 여자가 알 리가 없겠지만, 마침 유키에 씨와 동생이 편지를 주고받던 무렵 우노 코지(宇野浩二)의 <두 사람의 아오키 아이자부로(二人の青木愛三郎)>라는 소설이 나왔고, 그 안에 이 방법이 자세히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우리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을 정도니 동생도 유키에 씨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동생은 그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유키에 씨가 석 달 동안이나 같은 행동을 반복하다 결국 실망해 버릴 때까지도 그녀의 마음을 깨닫지 못했던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그 점은 나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우표 붙이는 방법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사랑에 푹 빠져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죠. 어찌 됐든 '실망' 따위의 말을 적은 것을 보면 그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나저나 요즘 세상에 이렇게나 고풍스러운 사랑이 다 있을까요. 내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랑을 서로 호소하고 있으면서도, 양쪽 모두 조금도 상대방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한 사람은 깊은 상처를 안고 이 세상을 떠났고, 다른 한 사람은 슬픈 실연의 아픔을 간직한 채 긴 생애를 살아가야만 하다니요.
그것은 너무나도 겁 많고 소극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유키에 씨야 젊은 여자이니 참작할 만한 여지도 있지만, 동생의 수단에 이르러서는 겁이 많다기보다 차라리 비겁함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죽은 동생의 방식을 조금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도리어 나는 그의 이런 특이한 성벽이 세상 무엇보다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태어날 때부터 몹시 수줍음이 많고 겁쟁이이면서도 자존심은 꽤나 강했던 그는, 사랑을 할 때에도 먼저 거절당했을 때의 부끄러움부터 상상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동생 같은 기질을 가진 남자에게 있어서 보통 사람은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입니다. 그의 형인 나에게는 그것이 잘 이해됩니다.
그는 이 거절당하는 수치를 예방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을까요. 사랑을 고백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하지만 만약 고백했다가 거절당한다면 그 부끄러움과 어색함은 상대방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 언제까지고 계속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만약 거절당했을 경우에 그것은 연애편지가 아니었다고 변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는 그렇게 생각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옛날 궁정 사람들은 어느 쪽으로든 뜻을 해석할 수 있는 '연가(恋歌)'라는 교묘한 방법을 통해 노골적인 거절의 고통을 누그러뜨리려 했습니다. 그의 경우도 딱 그것입니다. 단지 그는 평소 즐겨 읽던 추리소설에서 착안한 암호 통신을 통해 그 목적을 달성하려 했는데, 그것이 불행히도 너무 깊은 조심성 때문에 그토록 난해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나저나, 그는 자기 자신의 암호를 고안해 낸 치밀함과는 어울리지 않게 상대방의 암호를 푸는 데에는 어쩌면 이리도 둔감했던 것일까요. 지나친 자만심 때문에 터무니없는 실패를 저지르는 일은 세상에 종종 있지만, 이건 반대로 자만심이 너무 없어서 생긴 비극입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요.
아아, 나는 동생의 일기장을 펼쳐본 탓에 돌이킬 수 없는 사실에 닿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때의 심정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까요. 그것이 단지 젊은 두 사람의 가엾은 엇갈림을 슬퍼하는 것뿐이었다면 그나마 나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게는 또 하나의 더 이기적인 감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내 마음을 미칠 듯이 어지럽혔습니다.
나는 뜨거워진 머리를 겨울밤의 얼어붙은 바람에 식히기 위해 그곳에 있던 나막신을 꿰어 신고 비틀비틀 마당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어지러운 마음 그대로 나무 사이를 빙글빙글 끝도 없이 걸어 다녔습니다.
동생이 죽기 두 달쯤 전에 결정된, 나와 유키에 씨의 돌이킬 수 없는 약혼에 대해 생각하면서 말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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